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제목 장은진의 판타스틱 TV <23> 우리 시대 이병헌論
등록일 2020-11-25 조회수 550

눈 밑 주름에도 의미를 담는 배우



아침 신문을 읽다가 배우 이병헌에 관한 기사를 발견했다. 이병헌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국내 최초 배우 전문서가 출간됐다는 소식이었다. 반가운 가운데 ‘왜 이병헌이 1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안성기 최민식처럼 앞세대에도 훌륭한 배우가 있지만, 아마도 작품마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필모그라피를 촤르륵 펼쳐놓기에는 이병헌만한 상징적 인물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서적이라는 분류에 걸맞게 ‘배우연구소’에서 펴낸 이 책은 영화주간지 ‘씨네 21’ 기자와 ‘텐아시아’ ‘경향신문’ 등을 거치며 영화계 인물평을 써온 백은하 기자가 배우연구소 소장으로서 쓴 첫 평론서이다. 1990년대 말 ‘씨네 21’을 보며 영화비평을 익힌 영상학도라면 백은하 기자의 우리 시대 배우와 영화계에 관한 애정 어린 글을 접했을 것이다.



이 책 커버 사진에서 풍기는 이병헌의 아우라는 담백해서 더 깊이 다가온다. 여느 청춘스타처럼 TV 드라마로 출발한 그도 이제 눈가에 주름이 내려앉고, 눈 밑 다크 서클에 인생의 의미를 담아내는 중년이 되어가고 있다. ‘내부자들’ 속 정치 깡패 안상구의 폭주·분노, ‘남산의 부장들’에서 절친의 죽음을 사주한 뒤 번뇌에 휩싸여 이를 미세한 얼굴 잔근육 떨림으로 보여준 내면 연기, 로맨틱 남주(남자 주인공)로 여전히 유효함을 입증한 ‘미스터 션샤인’ 속 모습은 ‘Byunghunology(병헌론)’를 논할 가치가 있는 배우로서 그가 끝없이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연기 유전자는 복제와 충돌, 분열을 거듭하며 새로운 생명력을 향해 끊임없이 발전해간다.



필자의 바람은 부산 출신 인물 평론서를 써보는 것이다. 국제신문 대기자를 지낸 박창희 경성대 교수가 ‘부산 정신을 세운 사람들’이란 책을 낸 바 있지만. 낭만가객 최백호부터 가황 나훈아, BTS 지민과 강다니엘까지 (어쩌다 보니 모두 가수인데) 부산의 비린 바닷바람을 맞고 가파른 까꼬막을 달리며 생존을 위해 거칠고 투박한 말투를 갖게 된 부산 정서가 어떤 유전자로 전해지며, 우리를 보듬는지 써보고 싶다. 끌지 말고 다음 주 바로 써볼까.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부산 인물 1호 이야기를.



동명대 외래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