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제목 20년 넘은 공황장애 극복하고 시상대에 오른 이병헌
등록일 2021-07-18 조회수 189



 

2021년 칸 국제영화제는 한국인으로 시작해 한국인으로 막을 내렸다.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한국어로 개막을 선포했고, 한재림 감독의 신작 `비상선언`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이병헌이 폐막식 시상자로 무대에 올랐다.


 


이병헌은 17일 한국 배우로는 처음 칸 영화제 폐막식 무대에 올라 노르웨이 영화 `더 워스트 퍼슨 인 더 월드`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레나트 라인스베에게 여우주연상을 전달했다. 평소 공황장애 때문에 시상식 자리에서 무척 긴장한다는 이병헌은 이날 만큼은 여유로웠다. 객석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송강호가 눈빛으로 “힘내”라며 격려해주어서다. 실제로 이병헌은 시상대에 올라 이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20년 동안 함께 한 공황장애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이병헌은 프랑스어로 뤼미에르 대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을 향해 인사를 건넸고 영어로 "올해 영화제는 저에게 특별하다"고 운을 뗀 그는 "나의 친구들인 봉준호가 개막식에 있었고, 송강호는 심사위원"이라며 "또 심사위원장인 스파이크 리와는 같은 성을 갖고 있다"고 말해 좌중에 웃음을 안겼다.


 


폐막식 후 이병헌은 인터뷰에서 "시상자로 폐막식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송강호 형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며 "뭔지 모르겠지만 형의 눈빛이 '잘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힘이 났다"고 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이미 칸 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는 이병헌과 송강호는 이번에는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으로 칸 영화제에 왔다. 한재림 감독은 송강호 주연의 <관상> 등을 연출한 바 있다.





 


송강호와 다시 만난 '비상선언'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 월드 프리미어로 전 세계에 최초 공개될 <비상선언>은 초유의 재난 상황에 직면해 무조건적인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를 두고 벌어지는 리얼리티 항공 재난 영화다. 배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등이 출연한다.


 


 이병헌은 7살 딸과 함께 비행기에 오른 남자 역할을 맡았다. "트라우마로 비행기 공포증까지 있는 사람이 비행기 안에서 극단적인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 끝까지 뭐라도 해보려는 모습에서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이병헌은 2016년에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시상자로 무대에 올라가 외국어영화상을 시상했다. 당시 공황장애 증상으로 긴장한 그에게 알파치노는 이런 격려를 해주었다.


 


알파치노, 연기한다고 생각하고 즐기라  


 


당시 이병헌은 “내가 공황장애 증세가 있다고 말하기도 전에 알 파치노가 먼저 내 증세를 알아차렸다”며 “내게 ‘호흡곤란 같은 증세가 있느냐’고 묻더니 ‘촬영할 때는 긴장 안 하지 않느냐. 시상식 무대에서 나 자신이 아닌 새로운 캐릭터를 입혀서 한번 올라가봐라’고 조언해줬다”고 전했다.


 


이병헌이 26살 때 처음 공황장애를 느낀 장소도 비행기 안이었기 때문에 당시 경험이 <비상선언> 촬영에 도움이 됐다고도 한다. "그때만 해도 공황장애라는 말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심장병 정도로 생각했었다"며 "그 기분이 어떤지 아니까 이번 연기에 보탬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20년간 함께 해온 공포와 함께 살아내는 법 


 


 이병헌은 2013년 SBS ‘힐링캠프’에서 처음 공황장애를 고백했다. 당시 그는 2001년 방영했던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이 끝난 후 우울증이 찾아왔고 공황장애가 동반됐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남기신 빚을 다 갚고 드라마는 사랑받고 있는 상황에서 행복해야 하는데 나 혼자 화장실만한 공간에 갇혀있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매 순간 내가 죽은 느낌이었고 내 생애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이었다. 일어나는 순간 다시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직 잠자는 순간만이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이병헌은 "많은 사람들 앞에 설 때는 공황장애가 찾아오지만 연기할 때는 괜찮다. 하지만 낯선 곳, 시상식, 팬미팅 같은 곳에서는 말할 수 없는 공포가 찾아온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제는 무대에 설 때도 새로운 역할을 연기한다고 생각하고 숨을 고르며 시상대에 오른다. 이번 칸 영화제에서 그는 20여년 간 그를 괴롭혀온 공포를 달래며 함께 견디는 법을 배웠다. 그의 웃음에 관객도 함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