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제목 국제성을 겸비한 국내 유일 월드 스타, 이병헌
등록일 2021-07-31 조회수 893





지난달 송강호 편에서 이미 밝혔듯 한국영화 (제작) 100주년이었던 지난 2019년, 한 월간지에 11인으로 짜인 ‘한국영화 남자배우 10인’을 선정하며, 이병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그만의 국제적 감각 및 실력, 배우로서의 능력에 눈길을 던지는 순간”,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국내 유일의 월드 스타로 비상한다고. 이 나라의 배우가 브루스 윌리스, 아놀드 슈워제네거, 드웨인 존슨, 알 파치노, 안소니 홉킨스, 덴젤 워싱턴, 에단 호크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과 더불어, 영어 연기를 맘껏 펼칠 수 있으리라 그 누가 상상했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김진규의 지적 풍모, 신영균의 남성다운 육체성, 신성일과 최무룡의 아이콘적 외모, 안성기의 육중한 연기력, 심지어 장동휘, 박노식, 허장강 등의 액션 파워까지 두루 겸비한, 대체 불가의 스타-배우라 인정하지 않을 길 없다.” 

 

 

매니저 거치지 않고 연락 주고받는 유일한 배우 

 

30년 가까운 평론 활동을 해왔으니, 감독과 제작자는 물론 배우들과도 상당한 친분이 있을 것 같은 오해를 종종 받곤 한다. 가끔씩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특히 배우의 경우 두말할 나위 없다. 친하다는 것은 사적으로 자유롭게 만나 이런저런 담소를 나눌 수 있어야겠건만, 언감생심이다. 무엇보다 매니지먼트 시스템 탓에 매니저를 통하지 않고 직접 연락해 만나는 것은 아주 예외적이거나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서다.  

 

가끔 카톡 문자로 유연석과 연락을 주고받는데, 2000년대 초반 대학에서 내 수업을 받았던 학생이었기에 가능한 흔치 않은 케이스다. 류준열은 2014년인가 몸담고 있던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인사하게 돼 한동안 안부를 받고 보내곤 했으나, 시쳇말로 떠서인지 몇 해 전부터는 연락 자체가 아예 끊겼다. 송강호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이십 수년간, 오가다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어쩌다 국내외에서 만나 차나 식사, 술을 나눈 적은 있으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병헌과는 어떨까. 

 

이병헌은 30여 년간 영화 관련 글쓰기를 해온 필자가 최근 들어 매니저를 거치지 않고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스타-배우다. 그 매니지먼트사 대표를 포함해 관련 매니저들과 안면식이 있고, 더러는 일말의 친분이 있어서이기도 하겠으나, 당사자와의 어떤 인연들 덕분이다. 직접적인 첫 인연은,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이 2005년 칸영화제 공식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을 때였다. 나는 1997년부터 2017년까지 1999년을 빼고는 매년 칸을 찾은, 소위 ‘칸 20’이다. 기자회견장을 가더라도 저널리스트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마음에서 딱 한 번밖에 질문하지 않았는데, 그 한 번이 이병헌을 향한 것이었다. 

 

“누아르·액션 영화의 외피를 입고 있으나, 실은 치명적 러브스토리. 이병헌의 재탄생!”이라는 단평과 함께 ‘한국 영화 100선’에 꼽을 정도로 <달콤한 인생>에 열광해 왔는바, 그 무엇보다 극 중 캐릭터 선우의 몇 차례에 걸친 클로즈업에 치명적으로 매혹돼서였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확신하고 있다. 그 클로즈업들이야말로 문제적 걸작이 탄생·존재하는 진정한 이유라고. 클로즈업의 매체인 영화를 그만큼 응축적으로 표출한 예를 126년 영화 역사에서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그래 이병헌에게 그런 취지로 물었다. “오늘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클로즈업) 연기를 펼쳤다”고. 어찌 보면 구름에 달 잡는 것 같은 내 요지를, 그는 100% 이해했다. 그리고 내게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재탄생’에 부응하는 현답이었다. 

 

 그해 그는 2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시상식 당일 일본에서 적잖은 팬들과 함께 전세 비행기로 도착해, 국회 내에서 열린 행사장을 찾았다. 그때 여우주연상은 <너는 내 운명>의 전도연의 품에 안겼다. 영예의 작품상과 감독상은 <형사 Duelist>였다. 협회 총무로서 행사를 총괄 진행했던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전도연도, 이명세 감독도, 그 누구도 아닌 이병헌이었다는 사실을…. 

 

그날 재탄생한 것은 연기자 이병헌만이 아니었다. 내가 재발견한 것은 스타-배우를 넘어 한 인간에게서 드러날 수 있는, 진정성 배인 태도(Attitude)였다. 영평상이 중요하다 한들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해외 일정이라면 대리 수상이 무슨 흠이 되겠는가. 하지만 그는 그런 뻔한, 통속적 선택을 하지 않았다. 흔치 않은 안목과 배려로 자리를 빛냈다.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비상선언>의 배우이자 시상자 등 올 칸에서의 활약상도 그렇고, 오늘날의 이병헌은 그 특유의 사유와 사려 깊음, 애티튜드의 종합 산물이라는 것을.  

 

 





진정성 배인 태도, 이병헌의 재발견 

 

그런 덕목들은 부산영화제 한국 영화 담당 프로그래머로 2012년 런던한국영화제에 출장을 갔을 때 했던 인터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때 그는 <레드: 더 레전드> 촬영 차 런던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등과 함께 폐막식을 찾아 해당 영화제의 위상을 제고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내 인터뷰 요청에도 응했다. 마침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200만 명 선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말했다. “흥행 스코어에 연연해하진 않는다”고. “어떤 영화가 숫자에 의해 대변된다고 보진 않는다. <번지점프를 하다>나 <달콤한 인생> 등이 박스오피스에서 기대만큼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해도 난 그 영화들을 사랑한다. 내겐 그 사실이 중요하다”고. 연기할 때 가장 역점을 두는 게 있다면, “캐릭터의 어떤 순간, 감정, 진실을 온전히 표현하는 것이랄까. 그런 순간을 내가 원하는 만큼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고 판단되면, 내가 다시 찍자고 한다”고 답했다. “평소 의식하며 자기를 관리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어려서부터 관리 같은 건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살아왔다”고. 그러면서도 “시대가 바뀌어서, 배우들이 예능 프로 같은 데를 나가 인간적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다반사가 됐다. 때론 나도 그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떤 게 더 바람직한 건지는…”이라는, 다른 선택도 고려할 줄 아는 균형감 어린 답변을 들려줬다. 아직도 나는 그 인터뷰 순간들을 잊지 않고 있다. 

 

2015년 부산영화제 연구소장으로 셰릴 분 미국 아카데미위원회 위원장 내외를 영화진흥위원회와 공동으로 초청했을 때, 미국영화협회 코리아와 함께 기획·마련한 서울에서의 오찬에서도 그 태도와 안목은 단연 빛났다. 당시 그는, 일련의 ‘여자 문제’(?)로 구설수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는, 내 예상대로 우리의 초대에 당당히 응했다. 시종 셰릴 분 위원장에게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다음 해 그는 한국인 최초로 오스카 시상식 시상자로 초대된다. 그의 배우로서의 존재감도 한몫했겠지만, 그 당당함과 강력한 인상의 결과물이리라(는 것이 내 해석이다).   

 

그는 지난해 6월 발간된 내 단독 저서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의 표사도 보내줬다. 박찬욱 감독, 임진모 음악평론가와 더불어였다. 거기서 그는 “<기생충>이 맞이한 기념비적인 순간들을 전찬일 평론가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도 궁금해진다”면서, (전략) “이 모든 역사를 바르게 기록할 분이 있어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썼다. 그 전에 전화를 걸어와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묻기도 했다. 

 

얼마 전에 나는 칸에 머물 그에게 카톡으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때가 되면 만남을 청하겠다고도 했고, 그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나는 안다. 이 모든 게, 내가 그와 친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쯤은. 그가 마냥 좋은 평가를 받는 스타-배우가 아니라는 현실도 안다. 그럼에도 내가 알아온 이병헌은 인연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인간을 향한 한주먹의 배려 등을 지닌 그런 스타요, 연기자며, 인간인 것도 사실이다.





글 : 전찬일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