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제목 [인터뷰①] '남한산성' 이병헌 ”감독에 직설적 대사 요구, 한달간 고민”
등록일 2017-10-04 조회수 500
연기하는 이병헌이 무섭고 날카롭다면 인터뷰하는 이병헌은 그 이상으로 노련하다. 관록이 쌓인다고 해서 입담까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연기력만큼 말솜씨도 타고났다. 치고 빠지는 센스는 '천상유수'가 따로 없다. 

가볍고 유쾌한 질문에는 그 이상의 재미섞인 답변이 뒤따르고, 어느 정도 답을 정해놓고 던진 예민한 질문에도 현답은 기본, 껄껄 웃으며 유연하게 넘어간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느끼지만 때마다 놀라게 만드는 것도 이병헌의 재주다. 천부적 재능이다.

5년 전 1000만 돌파에 성공한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감독)'을 통해 그 해 가을 스크린을 뒤집어 놓았던 이병헌은 그 보다 더 깊어진 정통사극 '남한산성(황동혁 감독)'으로 올 추석 스크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흥행보다 '작품성'이 먼저 거론되고 있는 대작이다. 일각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 상업성을 작품성이 뛰어 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는 역시 이병헌이 있다. 작품보는 눈도, 그 작품을 낚아채는 솜씨도 탁월하다. 갈고 닦아놓은 내공이 있기에 가능한 행보다.

이미 1000만의 맛을 본 이병헌이지만 "정상적인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고 직언을 날리는데 거침없다. '남한산성'의 손익분기점은 약 500만 명. 혹여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도 감독·배우들의 만족도는 이미 최상이다. 그 마음이 관객들에게까지 이어지지 않을리 없다. 이병헌은 또 부러운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 '남한산성'에 대한 만족도가 큰 것 같다. 
"요즘 영화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출연한 것을 떠나 영화 자체만으로 좋았다. 오랜만에 정말 좋은 영화를 봤다." 

- 이번에는 애드리브도 전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생각조차 못했다. 워낙 글이 훌륭했고 애드리브가 필요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시나리오에 있는 것을 해내기 바빴다. 있는 그대로를 연기만 하면 된다는 것도 배우로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 대사량이 어마어마하다. 
"무의식적으로 긴장했다. 대사를 외우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 많은 양의 대사들을 외우고 소화해서 연기해내야 한다는 일련의 과정이 나도 모르게 나를 긴장하게 만든 것 같다." 

- 가장 긴장한 신은 무엇이었나. 
"아무래도 왕 앞에서 김상헌(김윤석)과 서로의 소신을 주장하며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 올리는 신이 힘들었다. 워낙 중요한 장면이라 배우 뿐만 아니라 감독 및 모든 스태프들이 긴장하고 있었다. 날이 제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그 중심에 박해일이 있었다. '남한산성' 최고 수혜자로 언급되고 있다.
"나와 김윤석 씨보다 더 긴장한 사람이 해일 씨였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말을 중간 중간 받아치거나, 본인의 대사가 없어도 앞에 계속 있어야 했는데 혹여 실수를 하게 될까봐 엄청 긴장을 해 촬영이 끝나면 우리보다 더 피곤해 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화면에 나오지 않아도 대사와 리액션을 직접 해줬다. 고생 많았다." 

 - 전체적인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사실 논쟁 신과 삼전도 삼배구고두례 신을 제외하고는 엄청 화기애애했다. 두 신은 확실히 경건했고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한 작품에서는 처음 만났더라도 오랜 시간 각자의 자리에서 연기했고, 과거 연극부터 공통적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화제될 소재가 많았다. 이야기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내가 있었던 현장은 그랬다.(웃음)"

- 최명길을 연기했지만, 이병헌으로서 바라볼 때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최명길과 김상헌 중 누구의 주장에 더 마음이 쏠리던가. 
"솔직히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침이 없었다. '난 누구에게 마음이 가지?'라고 생각했을 때, 치우침이 전혀 없다는 것도 참 신기하더라.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영화적으로는 오히려 한 쪽으로 치우치는 감정이입이 없었다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겠다 싶더라.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캐릭터에 공감하게 만들고, 선과 악이 있어 응징해 나가는 재미가 있어야 영화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으니까. 하지만 영화를 본 지금은 특정 답이 없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져주는 이 스토리가 '남한산성'만의 묘미이자 가치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연기하면서 답답한 마음은 없었나. 
"답답했다. 상헌은 직구를 던지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뚝심있게 거침없이 다 쏟아낸다. 하지만 명길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명길도 한 번쯤은, 명길도 결국 인간인데 바보같이 쉬운 이야기라 하더라도 한 번쯤은 터져 나오는 순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요청을 했다. '백성을 살려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네 고개 한 번 숙이는 것이 그렇게 힘드니? 가랑이 한 번 지나가는 것이 그렇게 힘드니?'라는 요지였다. 감독님이 받아들여 주셨고, 어떤 말이 좋을까 무려 한 달을 고민 하시더라. 그리고 조금 고쳐진 단락의 대사를 주셨다. 처음으로, 그래봤자 왕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못하고 가슴·허리 언저리를 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명길로서 내지를 수 있었던 장면이 그렇게 탄생했다." 

- 대사가 주는 울림이 크다. 마음에 와 닿았던 대사가 있다면.
"워낙 좋은 대사들이 많은데 뒤풀이 자리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는 부분이 '상헌은 유일한 충신이옵니다. 그를 버리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는 대목이더라. 그 장면도 좋은데 개인적으로 나에게 울림을 줬던 대사는 '저는 만인의 역적입니다'와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칸에게 말하는 대사였다."

- 영화를 보니 비주얼도 수척해 보이더라. 덩치 큰 김윤석과 대비 돼 보이기도 했는데, 일부러 체중 관리를 한 것인가. 
"일부러 빼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찌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었다. 아무래도 예민한 상황이니까 살이 쪄 있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