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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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시우의 A room] 이병헌의 시네마 천국, 이병헌관을 만나다
등록일 2019-07-17 조회수 1077
[정시우의 A room] 이병헌의 시네마 천국, 이병헌관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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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om’은 <Actor's room> 즉, <배우의 방>을 뜻합니다. (캐릭터에 빠져 사는) 배우가 나로 돌아가는 시간을 묻고자 하는 게 이 인터뷰 기획의 핵심입니다. 배우의 얼굴보다 공간이 더 깊이 담깁니다. 작품이야기보다는 배우의 생각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영화 <시네마천국>(주세페 토르나토레, 1988년)의 꼬마 토토에게 극장은 놀이터이자 낭만이었고 천국이자 행복한 도피처였다. 꼬마 이병헌에게 극장은 토토의 그것과 같았다. 토토가 마을 광장에 있는 ‘시네마천국’이라는 소극장에서 영화와 사랑에 빠졌듯, 이병헌 역시 성남에 있는 단관 극장에서 영화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지의 세계를 누볐다. 그리고 영화감독이 된 토토가 고향에 돌아와 감회에 젖은 것처럼, 영화배우가 된 이병헌 역시 먼 시간을 돌고 돌아 자신의 옛 흔적과 마주했다. 영화처럼.

7월 12일 ‘롯데시네마 성남중앙’에 이병헌의 이름을 딴 ‘이병헌관’이 조성됐다. 롯데컬처웍스가 조성한 첫 번째 영화인관이자, 임권택 안성기 박찬욱 김기영에 이은 다섯 번째 영화인 헌정관이다. ‘이병헌관’이 이병헌에게 지니는 의미가 남다른 것은, 이 공간이 그가 어린 시절 영화를 보던 옛 영화관이 있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즉 꼬마 이병헌이 사촌 형의 목말을 타고 극장 구경을 했던 곳이며, 그의 인생 롤모델이자 ‘영화광’인 아버지와의 추억이 곳곳에 뿌려진 공간인 셈이다. 영화를 향한 사랑을 품었던 공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상영관이 생기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에게 인터뷰를 청한 건 ‘이병헌관’ 오픈이 다가오는 6월의 어느 날이었다. 극장에 얽힌 추억을 자세히 듣고 싶다는 간절한 요청에 이병헌이 응답했고, 그렇게 <백두산> 촬영이 진행 중인 현장에서 막간을 이용해 이병헌을 만났다.



6월 24일 <백두산> 촬영 현장. 멀리서 다가오는 이병헌을 발견한 순간 하마터면 ‘헉’ 하고 소리 지를 뻔했다. 몸 구석구석을 덮은 상처와 핏자국 분장. 영화 촬영 현장인 걸 깜박했다면, 119로 전화를 걸어 SOS를 쳤을 그런 비주얼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이어진 강행군 촬영으로 녹초가 됐을 법도 한데, 이병헌은 큰 입을 활짝 웃어 보이며 연신 유머를 투척했다. 현장까지 달려 온 기자에 대한 배려인 걸 알았기에, 그와의 만남은 더욱더 귀했다. 이병헌의 ‘시네마천국’을 전한다.



-<남산의 부장> 촬영을 마치자마자 <백두산> 촬영에 오르셨습니다.

=<백두산> 제 분량은 5회차가 남았어요. 두 작품 다 ‘산’이라서 사람들이 그래요. “형, 다음엔 무슨 산 찍어?” (일동 웃음)



-<남산의 부장>이 아직 개봉 전이라 <백두산> 촬영을 마치면 미개봉작 두 편을 갖게 되시는 건데요, 배우 입장에서는 적금을 들어 둔 느낌도 있을 것 같아요.

=기분 좋은 설렘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배우가 제작발표회에서 “개봉 전에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돼요”라고 하는데 그건 명백한 사실이에요. 너무 정확한 사실이라 배우들이 마치 입을 맞춘 것처럼 대답하는 거죠. 저 역시 그래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합니다. 하지만 설렘이 더 크죠.



-4월에 <남산의 부장> 스틸컷을 개인 SNS로 공개하셨어요. 기대치가 확 올라가더군요.

=현장 편집 때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이 영화, 되게 세련됐다!’ 흔히 말하는 흥행 영화나 상업 영화일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기준에서는 의미 있는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장에서의 느낌과 결과물이 잘 맞는 편인가요?

=어느 정도는요. 그런데 그 모든 걸 떠나서 너무 행복한 현장이었습니다. 주요 배역이 저까지 5명인데 모두 처음 호흡을 맞춰보는 배우들이었어요. 이성민 곽도원 김소진 이희준. 어찌나 연기들을 기가 막히게 하는지, 촬영 내내 속으로 생각했죠. ‘이렇게 괴물 같은 배우들과 왜 이제껏 한 번도 안 했지? 어쩜 다 이렇게 연기를 잘하지?’ 너무 신났어요.



-이전부터 느껴온 건데, 연기 잘 하는 프로들과 만나면 더 신나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확실히 그래요. 배우 하나하나가 잘해 줬을 때 오는 시너지는 엄청나거든요. 그게 결국 작품 완성도로 이어지죠. 작품이 훌륭해야 배우도 인정받는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작품을 보는 관객은 또 얼마나 즐겁겠어요.



이병헌이 직접 디자인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과 '백두산' 모자. 그는 이 모자를 현장 스태프들과 나눴다.

-공감합니다. 아까 현장을 살피니 ‘백두산’ 문구가 새겨진 모자를 쓴 스태프들이 많던데, 직접 디자인을 해서 나눴다고요. 팀워크를 위해서겠죠?

=네. 형태 디자인은 모자 가게 힘을 빌렸고요 (웃음), 글씨 폰트와 위치만 제가 살짝 디자인했어요. <남산의 부장> 때도 그랬고요.



-현장에서 선배보다 후배를 만나는 일이 더 많아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특히나 <백두산> 촬영 현장이 그래요. 적어도 나와 연기하는 배우와 스태프 중에선 내가 가장 나이가 많습니다. 스태프들 세대교체도 많이 됐고, 근 20년 사이 스태프 평균 나이도 엄청 어려졌어요. 제가 연기 시작했을 땐 스태프 나이 층이 높아서, 현장 가면 인사하느라 정신없었거든요. 그때 가장 나이 많은 선배님을 보면서 ‘우리도 체력적으로 힘든데 저 선배님은 정말 힘드시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제가 그 나이가 된 거죠. 뭐랄까. 비현실적인 느낌이에요.



-당신을 잘 아는 분들은 ‘이병헌은 굉장히 나이스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것만이 내 세상>을 함께 한 박정민 배우도 그렇고 <내부자들>의 조승우 배우도 그렇고, 공통적으로 실제의 이병헌은 대중이 아는 이병헌과 다르다는 걸 알리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촬영장에서 배우나 스태프들로부터 “선배님, 제가 생각했던 것과 되게 달라요. 소년 같은 면이 있어요”라는 이야길 자주 들어요. 그런 소릴 들으면 기분은 좋은데 그렇다고 “(‘꽃받침’ 포즈 취하며) 어떤 게에~?” 하고 물어볼 수 없잖아요? (일동 웃음) 쑥스럽기도 해서 “에이, 뭐~” 하고 마는데, 아마 내 말투나 표정 때문에 그렇게 느끼지 않나 싶어요. 혹은 생각보다 실없는 농담을 잘해서 일 수도 있습니다. 저 형은 뭔가 다 알 것 같았는데 “이건 뭐야? 저건 뭐야?” 하는 저를 보며 속으로 ‘도대체 이 사람은 아는 게 뭐야?’ 할 수도 있고요. (좌중 폭소)


이병헌 과거와 현재. 강익중 작가의 전시에 이병헌은 “모든 이의 마음에는 10살짜리 소년이 있다”는 문구를 제공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내 마음의 풍금>에서 연기한 시골 학교 선생님 수하를 좋아합니다. 어른스러움 안에서 소년이 밖으로 자꾸 튀어나오는 캐릭터잖아요? 뵐 때마다 당신에게서 수하가 떠오르곤 해요. 개구진 면이 많으세요. (웃음)

=몇 해 전, 조선희 작가와 프로젝트 사진을 찍은 적이 있어요. 사진 앞에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짧게 써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쓴 마지막 멘트가 ‘어른 때로는 소년’이에요. 사실 그건 그 몇 년 전에 찍었던 어떤 광고 카피에요. 그 카피를 보면서 ‘와, 내가 늘 생각해 왔던 걸 어떻게 이토록 압축해서 잘 표현했을까. 역시 카피라이터의 능력은 대단해~!’ 감탄했죠. 너무나 내 마음과 같은 말이었기에, 고스란히 썼던 기억이 납니다.



-‘어른 때로는 소년’ 제 마음에도 와 닿는 문구군요.

=그런 생각, 해 본 적 있어요.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다고 하는데, 왜 다들 내가 무서운 사람일 거라고 생각할까. 맡았던 역할 때문인가? 작품 이외의 활동을 안 해서 그런가? 인터뷰 때 두서없이 얘기해도 그걸 예쁘게 정리해서 그럴싸하게 써 주시는 기자분들 덕분인가? (웃음) 그런 생각도 해요. 저보다 이전 세대들은 ‘배우는 자신을 보여주면 안 된다’하는 배우론 비슷한 게 있었어요. 그걸 신비주의라고 표현하면 맞을까요. 어떻게 보면 과거 배우들 대부분이 신비주의였죠. 그런 식으로 배웠고, 또 그게 맞겠거니 하며 지내 온 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그땐 지금처럼 자신을 보여 줄 매체도 많지 않았으니까요. 요즘 개인 SNS를 통해 유쾌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계십니다. ‘흑역사 짤’도 거침없이 공개하시고요. (웃음) 결국 자신의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느냐 작품 안 캐릭터로만 남아 있느냐는 배우 선택의 영역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사실 저는 SNS를 안 하겠다고 몇 년 동안 버텼어요. 그런데 미국 매니저도 그렇고 주위에서 자꾸 “이게 대세”라며 은근 강요하지 뭐예요. 가령 드웨인 존슨과 사진을 찍으면 “와, 저 친구 팔로우가 수백만인데!” 하며 안타까워하는 식인 거죠. (일동 웃음) 자꾸 추천하길래 “알았어. 할게, 할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시작한 게 있어요.



-결과적으로 SNS 운영을 잘하는 배우로 거듭나셨는데요.

=‘다음에 또 뭐가 나올지 기대되는데?’라는 반응이 많아서, 이게 참... (웃음)



-유머를 이야기했지만, 당신 연기의 특징 중 하나는 ‘특유의 감성’이지 않을까 싶어요. <달콤한 인생>의 선우는 물론이고, 나쁜 놈으로 특명 됐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조차 캐릭터에 슬픔이 느껴졌죠. 그 와중에 양식화될 수 있는 캐릭터 전형을 늘 깨부숴왔다는 점에서 감성의 이면에서 꼼꼼한 연기 설계도 했으리란 추측을 하게 됩니다. 대학원 시절 잠시 준비했던 논문 주제가 ‘연기에서 가장 이상적인 이성과 감성의 비율은 얼마일까’였다고 들었는데, 그 주제에 꽂힌 이유가 있겠죠?

=제가 방송국 공채 출신인데, 그 무렵엔 방송국 PD 중에 학구파가 많았습니다. 굉장히 이성적인. 그분들이 얘기하기를 “(실감나는 액팅 선보이며) 자 봐봐~! 아무리 몰입한들 살인 장면에서 정말 사람을 죽일 거야? 아니잖아!”, “여기 카메라 있지? 카메라 불 켜지는 게 느껴지지? 이건 이성으로 느끼는 거야”, “조감독이 ‘큐’ 주는 거 어떻게 봐? 이성이 있으니까 보는 거야~” (일동 웃음) 자꾸 듣다 보니 ‘이게 감정에 빠지라는 건가, 빠지지 말라는 건가’ 혼란이 오더군요. 고민하다가 ‘이걸 주제로 논문을 써 보면 재밌겠다’가 된 거죠. 그런데 브레히트 그 양반이 그와 흡사한 주제로 쓴 글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접었습니다.



-이젠 어떻습니까. 이성과 감성의 이상적인 조합 비율을 어렴풋이 터득하셨나요?

=지금 생각은 그래요.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 장면마다 다르기도 하니까요. 굉장히 기술적인 걸 요구하는 장면에서는 감성적으로 많이 치우칠 수 없죠. 반면 온전히 감정에 맡겨서 자기를 던져봐야 하는 신들이 있고요.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느낍니다.



-실생활에서의 당신은 어떤가요. 이상가에 가깝나요, 공상가에 가깝나요.

=확실히 공상가죠. 너무 그쪽이라 가끔 충고도 들어요. (웃음) 하지만 그것이 내 연기의 원동력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한 우물에 고이지 않도록, 늘 열려 있으려고 노력하죠.



어느덧 데뷔 29년. 하지만 그에게선 여전히 이전에 보지 못한 얼굴들이 나온다. 먼 길을 걸어 온 자의 피로감이 쉬이 잡히지 않는다. 이날 나는, 그 비밀을 얼핏 들여 다 본 기분이 들었다.



-이 인터뷰가 나갈 때 즈음에 ‘이병헌관’이 오픈해 있을 겁니다. 개관일인 7월 12일은 생일이기도 한데요, 아무래도 배우가 자신의 이름을 딴 관을 갖는다는 건 의미가 남다르겠죠.

=너무 큰 의미죠. 늘 내가 영화를 더 좋아하는 건지 극장을 더 좋아하는 건지 헷갈렸어요. 그만큼 극장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죠. ‘이병헌관’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믿기지가 않아서 매니저에게 계속 “그거, 진짜야?”하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인이라면 세상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어요.


이병헌이 연기한 캐릭터 피규어와 '내부자들' 의수, 시나리오집들. ‘내부자들’ 안상구, ‘달콤한 인생’ 선우, ‘마스터’ 진회장 피규어는 변요한 배우 작품이다.

-‘이병헌관’에 전시되는 피규어 다섯 개 중, 특별한 피규어가 있다고요.

-<지.아이.조> 스톰쉐도우와 <광해> 하선 피규어는 시중에 판매가 되는 거예요. 그 외 <내부자들> 안상구, <달콤한 인생> 선우, <마스터> 진회장 피규어는 모두 (변)요한이가 만든 겁니다. <미스터 션샤인>으로 처음 만났을 때, 요한이가 “선배님, 저 선배님 피규어 집에 있어요” 하갈래 “나도 있어 (웃음)” 했더니, “저는 제가 만들었어요” 하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그런 거 만드는 사람은 처음 봤거든요. 그게 이렇게 쓰일 줄이야. 준비하면서 요한이에게 “피규어를 전시할 수 있냐”고 부탁하니까, “너무 영광입니다”하며 선뜻 기증해줬어요. 참 고마운 일이죠.



-<내부자들> 의수, <광해, 왕이 된 남자> 의상, 캐릭터 피규어, 추억의 사진, 시나리오 등 여러 소품이 전시되는데요, 더 넣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소품도 있겠죠?

=아우, 그럼요. <지.아이.조> 찍을 때 스튜디오에 부탁해서 스톰쉐도우 의상뿐 아니라, 장갑, 표창, ‘싸이’라고 하는 삼지창 무기, 칼을 받았어요. 국내로 가져오려고요. 칼은 세관에서 문제가 될까 봐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맡겨 뒀고, 칼을 뺀 나머지를 모두 가져와 회사 사무실에 전시해 뒀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의상과 함께요. 그런데 아뿔싸. 사무실 리노베이션 하느라 창고에 뒀는데, 어디로 갔는지 전부 사라진 거예요. 그건 진짜 아쉬워요. 더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서 고민 중에 있습니다.



-처음 극장에서 접한 영화가, 네 살 무렵 사촌 형 목말을 타고 본 <빠삐용> 이라고요.

=워낙 어릴 때여서, 마지막 탈출 장면만 이미지로 남았었죠.



=영화 내용을 인지하기 시작한 후 처음 꽂혔던 영화는 뭔가요?

=이소룡(브루스 리) 영화. 한 장면 한 장면 다 기억나는 건 이소룡 영화예요.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내 모든 것을 장악했던 건 <로버트 태권V>. 방학을 기다렸던 가장 큰 이유가 <로버트 태권V> 때문이었어요. 늘 방학에 맞춰 개봉했거든요. <로버트 태권V> 주제가가 나오면 눈물이 날 만큼 좋았습니다.



-문득 <로버트 태권V> 실사판 주인공을 맡으시면 어떨지 궁금해지는군요. (웃음) 칸국제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해 거장 감독 35인이 모여 만든 옴니버스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을 보셨는지요. 이 영화에서처럼 극장이란 키워드로 단편을 만들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극장을 그리시겠습니까.

=어릴 때 느꼈던 극장이라는 공간은 ‘타임머신’ 같았어요. 암흑 속에 있다가 영화가 탁 시작되는 순간, 그 누구보다도 빨리 스크린 안으로 빨려 들어가곤 했어요. 영화가 상영되는 순간만큼은 내가 정말 그 세상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죠. 그런 기억 때문인지 영화는 암실 같은 공간에서 봐야 한다는 게 있어요. 실제로 작은 방 하나를 그렇게 만들었는데, 그 공간이 내게 타임머신 같은 역할을 해 줍니다. 적어도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내가 집에 있는지, 사무실에 있는지 잊게 돼야 한다는 게 있어요. 아주 잠깐의 모멘트가 그런 느낌이 들어야 한다는 거죠.



-영화 선택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렇죠. 어떤 영화는 아무리 틀어놔도 집이죠. (웃음)

 
<시네마천국>에 대한 이병헌의 애정을 각별하다. 그 자신이 어린 시절 경험하고 느꼈던 극장의 풍경과 정서를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사실 기사 알프레도가 건넨 필름 속에 담긴 (‘검열’에 잘려 상영되지 못했던) 수많은 키스신을 보며 눈물짓는 토토의 마지막 모습은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 문득 궁금해서 질문을 던졌다.



-<시네마천국> 엔딩처럼 ‘키스신만을 모아놓은 선물 같은 내 인생의 장면은 뭘까’를 생각한다면, 어떤 장면들을 꼽으시겠습니까.

=어려운 질문이네요. 몇 가지 요소를 만족시켜야 하는 거잖아요? 토토에게처럼 금기시됐던 것. 그럼에도 보면서 계속 눈물이 나야 하는 장면일 테니까요.


-아…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게까지 심오하게 생각하지는 못하고 드린 질문인데요, 역시 <시네마천국>의 핵심을 정확히 짚고 계신 분 답네요. (웃음) 그렇다면 더 궁금해집니다. 금기 같은 것이지만,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은 장면이 뭘지.

=그렇게 따지면, 어렸을 때 엄마 몰래 했던 나의 추억들일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살던 곳 주변에 논밭이 되게 많았어요. 개구리 잡으러 다니는 게 초등학교 시절 나의 가장 신나는 일이었죠. 친구들과 개구리 잡다가 밤늦게 들어와서 엄마에게 잊을 수 없을 만큼 맞은 적이 있는데, 사실 엄마 몰래 개구리 잡으러 다닌 건 그날만이 아니었어요. 화창한 여름, 친구들과 숲을 돌아다니며 개구리 잡았던 그런 장면들. 그리고 불량식품을 먹으면 혼났는데, 하루는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서 몰래 달고나를 만들었어요. 재료들을 넣고 요령껏 만들었는데, 설탕이 녹으면서 국자가 까맣게 탄 거예요. 아무리 지워도 안 지워지길래, 큰일 났다, 하면서 몰래 국자를 들고 나가서 버린 일. (일동 웃음)



-소년 이병헌은 청개구리 기질이 다분했군요. (웃음)

=그리고 제가 8살이고 동생이 아장아장 기어다닐 때, 집에 우리 둘만 있었는데 갑자기 불장난이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안방에 있는 큰 쓰레기통에 성냥으로 불장난을 했어요. 문제는, 쓰레기통이 플라스틱 재질이었던 거에요. (일동 ‘헉’) 어땠겠어요. 불이 천장 근처까지 활활. 부랴부랴 대야에 물을 담아 날라서 붓고…. 그 8살짜리가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해요. 그건 아직까지도 비밀이에요. 엄만 몰라요. 그날 집에 돌아온 엄마가 그랬을 거예요. “여보~ 우리 쓰레기통 어디 갔어?” (좌중 폭소) <시네마천국>과 같은 장면을 꼽는다면, 제겐 그런 기억들입니다.



-<시네마천국>의 토토에겐 알프레도라는 인생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알프레도 같은 존재는 아버지였다죠.

=네. 아버지는 엄청난 영화광이셨어요. 어렸을 때 TV에서 해주는 옛날 영화들, 특히 서부 영화들을 아버지와 봤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3-4학년 즈음인가. 학교 끝나고 집에 왔는데 아버지가 “병헌아~ 아빠가 극장 구경 시켜 줄까?” 하시는 거예요. 너무 좋아서 쫄래쫄래 따라갔는데, 충격적이게도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아버지가 코를 골면서 주무시지 뭐예요. ‘어? 우리 아빠, 영화 되게 좋아하는데~!’ 놀라기도 하고 약간 창피하기도 해서 아빠를 깨우면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하…그런 기억도 너무 좋은 추억이죠.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던 아버지가 아들이 나오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건 어떤 기분이셨을지, 상상하니 뭔가 뭉클합니다.

=데뷔작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부터 제 영화는 당신이 살아계시는 동안 모두 극장에서 보셨어요.

 할리우드 촬영장에서 사용한 이병헌 의자

-아버지에게 보여드리지 못해서 안타까운 작품을 꼽자면 뭐가 있을까요?

=딱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서부영화의 고전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한) <매그니피센트7> 혹은 <레드2>. 당신이 좋아하는 서부 영화를, 아들이 한국이 아닌 본토에서 할리우드 배우들과 찍고 있는 걸 보셨다면 정말 기뻐하셨을 겁니다. <레드2>의 경우 아버지 사진과 이름이 영화에 나와요. <레드2> 첫 시사회 때였어요. 영화를 보고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 우리 아버지 이름이 제 이름과 함께... 그때의 그 뭉클함이란. 감동받아서 감독을 꼭 안아줬던 기억이 납니다.



-1997년 <지상만가>에서 할리우드로 진출해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꿈을 꾸는 청년 종만을 연기하셨습니다. 종만이 이루지 못한 꿈을 종만을 연기한 당신이 대신 이뤄준 느낌도 드는데요, 할리우드라는 시장에 대해 초반에 느낀 감정과 지금은 많이 다르겠죠?

=초반에는 자욱한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은 암담함,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불안함이 있었어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말씀하신 <지상만가> 생각을 했죠. 종만이 할리우드를 밟는 건 판타지잖아요?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됐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어요. ‘20년 전 판타지라고 생각했던 걸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와, 되게 우연이다’ 싶고. 이뤄놓은 건 없을 때지만-막막하고 불안했지만-내가 나를 도닥여주고 싶은 마음이 한 편엔 있었습니다.



-가장 큰 불안은 어디에서 왔나요?

=커리어로 봤을 때 ‘무모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한국에도 아직 호흡을 맞춰보지 못한 좋은 감독과 작품들이 많았기에, 모르는 땅에서의 도전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죠.



-기회비용이라는 게 발생하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안 해 보고 죽느니 경험해 보고 죽는 게 낫지’라는 마음이 컸어요. 진출 초반에는 내 취향의 장르는 아니지만, 또 스테레오 타입의 역할이지만, 나를 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선택들이 있었습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 여기며 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매그니피센트7>과 <레드2>에서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굳이 동양 배우가 아니어도 되는 캐릭터를 연기하셨습니다. 이미 다음 단계에 들어섰다고 여겨지는데요.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장르와 내가 원하는 캐릭터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어떻게 보면 무모한 꿈에 더 다가가 볼 수 있는 기회의 시점이지 않을까란 생각은 듭니다.

그의 메모와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할리우드 진출 초반, 분명 미국 시장은 이병헌이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펼칠 만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반대다. 다양한 기술력과 시나리오가 있는 미국 시장은 한국 시장이 담지 못하는 이병헌의 역량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시장이 됐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접어두고, 모험의 길을 선택한 이병헌이 직접 이룬 성과다.



-요즘은 한국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이 분야 선구자로서, 후배들이 조언을 구해 온다면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으신가요.

=생각하는 것보다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일단 할 것 같아요. 많은 준비를 하고 가라고 응원할 테고요. 가장 중요한 건 어쨌든, 언어죠. ‘영어를 말하는 것’과 ‘영어로 연기하는 건’ 차원이 달라요. 가령 누군가가 저에게 같은 문장을 가지고 10가지로 감정을 표현해 보라고 하면 한국어로는 가능한데, 영어로는 2-3개밖에 안 됩니다. 그럴 때는 벽에 부딪히죠. 보이스코치가 “이 발음은 원래 이거에요” 하면, 외웠던 대사들이 하얗게 돼 버리기도 해요. ‘큰일 났구나’ 하면서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거죠. 그런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말을 가지고 놀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정도는 돼야 감독이 요구하는 것, 상대 배우가 충고하는 걸 들으면서, 자기 뜻을 다양하게 펼칠 수 있죠.



-당신에겐 언어에 대한 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어도 유창하게 구사하시잖아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영어와 일본어를 이물감 없이 오가셨어요. 개인적으로 <마스터>에서 진현필(이병헌)이 필리핀에서 사기를 칠 때 구사한 필리핀식 영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상대방을 능구렁이처럼 속이는 진현필의 약삭빠른 면모를 그렇게 살려내실 줄 몰랐거든요.

=하하하. 누구나 어떤 하나에 특출한 게 있잖아요? 누군가에겐 요리일 수 있고, 공부일 수 있고, 운동일 수 있죠. 저는 다른 건 모르겠는데 언어 감각은 조금 받은 것 같아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스터 션사인>에서 일명 ‘김은숙체’로 불리는 대사를 만난 기분은 어땠나요? 당신이 김은숙 작가 특유의 대사를 어떻게 소화할까 내내 궁금해하며 지켜봤습니다만.

=내 안에서 전쟁이…(웃음) 초반엔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컸었죠.



-“합시다, 러브”와 같은 대사를 들을 때 ‘참 저 배우 아니면 오글거렸을 텐데, 배우의 힘이란 게 저런 거구나’를 느꼈습니다. 진심 궁금합니다. 연습의 산물인가요, 타고난 것일까요.

=감독과 이 캐릭터가 어떤 감정인지, 그리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를 먼저 상의해요. 상황과 감정에 맞게끔 최대한 조율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나온다? 그럴 경우 합리화 작업에 들어갑니다. ‘이 감정일 거야. 그래, 이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어. 오케이!’ 그렇게 어떻게든 타협을 보고 들어가야지, 해야 하니까 앵무새처럼 읊으면 영혼 없는 연기가 나오죠. 그럼 바로 들통이 납니다. 내가 가짜로 연기를 했는데, 보는 사람들이 거기에서 어떻게 진심을 느끼겠어요.

 

그의 필모그래피를 한 눈에 만나볼 수 있게 꾸며진 공간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캐릭터를 믿지 못하고 자기를 믿지 못하는 배우의 의심은, 관객에게 전이되기 마련이니까. 이건 단순히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연기를 대하는 배우의 태도에 관한 것일 테다.



-<미스터 션샤인>은 <아이리스> 이후 9년 만의 드라마였습니다. <아이리스>와 <올인> 사이에는 6년의 시간이 있었고요. 이 간격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십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드라마는 늘 열려 있습니다. 드라마가 지니는 또 다른 매력이 있으니까요. 이번 <미스터 션샤인> 찍으면서는 깜짝 놀랐어요. 퀄리티가 엄청나게 좋아졌더라고요. 영화와 드라마 간 갭이 옅어지는 걸 느꼈죠.



-팬들은 당신이 드라마와 영화를 하는 것 중 어떤 걸 더 선호합니까.

=일주일에 1-2번씩 볼 수 있는 드라마죠. (웃음) 영화는 반년을 기다려도 2시간이면 끝나잖아요.



-많은 인터뷰에서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를 봤을 때 계획한 것처럼 선택을 해왔고 성공으로 이어져 온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계획 없이 가는 성향에 가깝다”라고요. 그럼에도 단순한 운이나 우연으로 보기엔 이루신 성과가 눈에 띕니다. 그건 무의식적으로 당신이 견지하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 영화는 예술적으로 훌륭한 작품이야. 이게 영화야’라고 이야기하는 분도 계시지만, 저는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떤 분에겐 자기에게 큰 의미를 준 게 재미일 수 있죠. 저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시나리오는 웃기는 것도 없고, 딱히 슬픈데도 없는데, 이상하게 가슴에 와 닿아요. 저는 그것도 재미라고 생각해요. 그 판단으로 작품을 선택하죠. 제가 선택한 영화를 많은 분이 좋아해 준다면, 저와 관객이 재미있어하는 것의 공통분모가 많아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의 할리우드 진출작 '지.아이.조'

-<지.아이.조>의 스톰쉐도우는 이병헌이라는 연기파 배우에게 제약이 많은 캐릭터였습니다. 온몸이 무기인 배우에게 눈만 허락하고 가면까지 씌웠으니까요. 그런데 본의 아니게 ‘배우가 눈으로도 풍부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는 걸 강하게 증명하셨죠.

=설마요. 그런, 엄청난 과찬을!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에요. <지.아이.조>가 개봉했을 때 영화를 향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스톰 쉐도우 매력에 대해서는 호평이 상당했습니다.

=아!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이 있는데, 촬영하면서 감독과 카메라 감독이 놀란 적이 있었어요. 파리 도심에서 펼쳐지는 추격신에서 제가 길거리에 뒹굴다가 피를 흘리며 고개를 탁 치켜드는데, 카메라 감독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면서 “오~ 무비스타~!” 이러는 거예요. (일동 웃음)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어요. 왜 자꾸 나를 ‘무비스타’라고 하나 생각해보니 그들은 저를 무술인으로 생각했던 거에요. 가면을 벗기면 제가 ‘발연기’를 할까봐 불안했던 거죠.



-저런, 엄청난 오해를. 국내에서도 흔히 스타와 배우, 연기자라는 말을 혼용해 쓰는데 ‘무비 스타’는 그런 개념인가요?

=보통은 그냥 ‘액터’라고 해요. 거기에서 ‘무비 스타’라고 하는 건 연기 잘하는 사람 중에 스타를 지칭하는 거죠.



-오, 무비스타~! (웃음) 당신의 매력을 말할 때 자주 거론되는 게 ‘목소리’ ‘눈빛’ ‘환한 미소’ 등입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당신의 매력은 ‘클래식한 턱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장난 가득 담아) 이거, 뭔가 찾아보다가~ 찾아보다가~ 없으니까 ‘그래! 턱선이라고 하자!’ 이러시는 거 아닌가요? (일동 웃음) 사실 저도 내 턱이 꽤 마음에 듭니다. 세대가 달라지면서 얼굴형이 많이 바뀌었어요. 나 같은 각진 턱이 잘 안 보이죠. 그러다 보니 뭐랄까. 그 자체가 매력적이기보다는 희소성 때문에 매력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활동 무대가 넓은 만큼 비행기 마일리지도 엄청날 것 같아요. 그런데 비행기 타는 게 체력적으로 은근 압박이 있잖아요? 장시간 비행을 버티는 당신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영화 보죠, 계속.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해요. 물론 조그마한 화면으로 이어폰 끼고 봐야 한다는 게 안타깝긴 하죠. 그럼에도 좋아요. 가장 찝찝한 순간은 영화 보는데 착륙할 때. 게다가 그 영화가 재미있었으면 너무 찝찝합니다. 뭔가 안 끊고 나온 듯한 느낌? (일동 웃음) <그린 북>이 그랬어요. 그 영화, 참 좋더라고요.



-미국의 극장 문화가 국내 극장 문화와 다른 게 있나요?

=지금은 거의 비슷해요. 클래식한 옛날 분위기를 고수하려는 분위기 있는 단관 극장이 있긴 하지만, 미국도 요즘은 대부분 멀티플렉스니까. 제가 주로 촬영한 곳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요. 뉴올리언스 자체는 관광객도 많고 번화가인데, 촬영지는 외진 곳에 있어요. 악어와 뱀이 나오는 늪지대 같은 곳이죠. 거긴 비가 들입다 와요. 너무 습해서 물속에서 촬영하는 느낌이 들 정도죠. 날씨는 또 얼마나 더운지. 그러다 보니 촬영 없는 날엔 무조건 극장에 가는 거예요. 촬영지 인근에서 제일 좋은 시설이 극장이거든요. 대사를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들어가 앉아 있는 거죠. (웃음) 에어컨 나오고 쾌적하니까.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시상자로 나섰고, 아시아 배우 최초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습니다. 이건 할리우드 진출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의 성과일 텐데요, 두 가지 경험은 당신의 배우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요

=배우로서 기념비적인 일이 생기면 책임감 같은 것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때 감정을 잘 컨트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측면에서 받아들여야지, 어깨가 굳고 자기 틀에 갇혀 버리는 건 경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이성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사람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그렇게 되겠어요. 노력할 뿐인 거죠. 중압감보다는 ‘자유롭고 공상 좋아하는 이전의 나로 돌아가자’라고 노력해요. 그래야 연기를 계속 즐기고, 또 다음 스탭으로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한국 배우 최초의 아카데미 수상을 당신에게 기대하는 시선도 있는데요.

=최초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배우는 운동선수처럼 기록을 경신하는 직업이 아니니까요. 최초이든 두 번째든 세 번째든 그럴 수만 있다면 배우로서 행복하게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와, 진짜 행복하겠죠.



-어린 시절 당신에게 영화는 꿈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영화에 대한 개념이 조금 바뀌었나요?

=바뀌었죠. 나쁘게 말하면 변질됐다…? (잠시 생각) 네. 그런 측면도 느낀 적이 있어요. 말씀드렸듯, 내가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한 이유는 그 시공간으로 모든 것들이 이동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최근의 영화들, 특이 우리나라에서 짧지 않은 시간 유행한 작품들은 비릿한 장르물들이죠. 범죄, 비리 같은…<내부자들> <마스터> 등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장르물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연속으로 이런 걸 하다 보니 ‘잠깐만! 내가 어릴 때 좋아했던 영화 느낌이 아닌데? 뭐가 바뀐 거지?’라는 생각을 간혹 합니다. 그럼 고민에 빠지죠. ‘초심을 잃지 말고, 지금 사람들도 타임머신 타는 느낌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야 하는데’라는 반성이 드는 반면, ‘그런데 그런 시나리오가 있나?’라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할리우드로 가서 SF 판타지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판타지 아야기를 하셨는데, 당신 연기는 어떤 장르에서든 일상에 밀착된 느낌이 있어요.

=그렇죠. 연기는 일상적으로 현실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령 <번지점프를 하다>도 저는 판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존 말코비치 되기> 같은 영화도 현실적인데 어떤 부분은 판타지잖아요? 그런 영화일수록 일상에 발 딛고 있는 연기가 필요하다고 봐요. 설정이 판타지인데, 배우의 연기도 들떠 있으면 관객이 쉽게 영화에 빠지지 못할 테니까요.



-고백하자면 인터뷰에 앞서 걱정을 했어요. 중요한 신 촬영이 있는 날이라고 해서, 인터뷰로 감정을 깨는 게 아닌가 조바심이 컸거든요. 주요 신 촬영 땐 많은 배우가 예민해진다고 듣기도 했고요. 그런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편하게 해 주셔서 내심 놀라는 중입니다.

=하하하. 저는 촬영 때 푹 빠져 있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물론 그런 날도 있죠. 그래야 하는 날도 있고요. 하지만 캐릭터를 매 순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백두산> 이후 차기작 소식은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요.

=아직 구체적으로 뭔가를 계획하고 있지는 않아요. 좋은 미국 작품이 있으면 가서 미팅도 할 생각인데, 일단은 조금 쉴 생각입니다.



-쉬시는 동안, ‘이병헌이 이병헌관에 깜짝 출몰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것 같기도 하군요.

=생각 같아서는 매일 가서 극장에 앉아 있고 싶어요. 그런데 관객과 마주치면…너무 쑥스러울 것 같아요. (웃음)

 
'광해, 왕이된 남자'는 '이병헌관'의 오프닝작으로 상영됐다.

7월 12일. ‘이병헌관’ 개관식을 보기 위해 ‘롯데시네마 성남중앙’을 찾았다. ‘이병헌관’에선 오픈을 기념해 이병헌이 직접 선택한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상영되고 있었다. 좌석은 ‘이병헌관’의 시작과 그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한 모인 팬들로 만석이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이병헌은 극장 로비에 전시된 자신의 추억들을 꼼꼼히 둘러봤다. 자신의 지난 시간을 반추하며 그는 또 어떤 내일을 꿈꿨을까. 그의 사진이 전시된 공간에는 ‘이병헌이 이병헌에게’ 쓴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앞서 언급한 ‘어른, 때로는 소년’의 나머지 토막들이다.



“애써 어른스러워지려고 하지도, 철없다는 핀잔에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때로는 철없던 어린 시절의 그 순수했던 엉뚱함으로, 지나치리만큼 자유로운 생각 때문에, 오히려 생각없어 보이던 그때 그 기분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사는 건 아주 멋진 일이라 생각하거든. 어쩌면 그건 네가 살아가면서 생각지도 못할 만큼, 엄청나게 위대한 무기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어른, 때로는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