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제목 [단독] 칸에서 만난 송강호·이병헌과 대담 "韓영화 전세계에 각인"(인터뷰)
등록일 2021-07-20 조회수 617


"처음 뵙겠습니다. 아이고? 아니네, 아는 기자님이시네. 허허허." 칸 영화제 심사위원 송강호는 바빴다. 영화제 측과 인터뷰를 막 마치고 테이블에 앉던 그는 정돈된 인사를 건네려다가 문득 국내에서 취재에 나선 기자임을 알아보고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물 한모금 마시며 본지와 마지막 만남이었던 아카데미(오스카) 현장을 떠올리며 회포를 풀었다.

칸 영화제에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던 순간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현지에서 역사적 현장을 취재하며 크게 놀라고 기뻐한 기억이 난다. 당시 송강호는 프레스룸을 찾아 봉준호 감독을 향해 큰 박수를 보내며 환하게 웃었다. 2년 2개월 만에 다시 칸에서 만난 송강호는 달랐다. 그 때에 비해 여유가 넘쳤고 외모마저 '칸 스타일'로 변해 있었다.

이병헌은 해외에서 유독 빛나는 배우라는 인상을 받았다. 정돈된 헤어스타일에 각 잡힌 슈트. 유창한 영어 실력까지. 그는 해외 무대에서도 여유가 넘쳤다. 외신과 인터뷰를 소화하면서도 국내에서 취재에 나선 언론을 따뜻하게 챙기는 모습에서 진정한 '월드 클래스'의 품격이 느껴졌다. 배우 최초 폐막식 시상자. 타이틀 만으로 부담이 넘칠 일이었다. 그는 "긴장된다"며 앓는 소리를 했지만 본 무대에 올라 유창한 불어·영어에 유머까지, 멋지게 시상을 마쳤다.

7월 하늘 아래 펼쳐진 제74회 칸 영화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뜨거웠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2년 2개월만에 재개된 영화제. 오래 기다려온 영화를 향한 전 세계 영화인의 열망이 루미에르 극장에 모였다. 세계 각국의 훌륭한 영화들이 경쟁 부문 후보를 화려하게 수 놓았다. 아쉽게도 폐막식에서 한국영화와 영화인의 이름이 불리길 바라는 마음마저 빼앗긴 영화제였지만, 경쟁 작품과 감독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한국 영화사에도 남다른 의미를 더한 영화제였다. 배우 송강호가 심사위원을 맡았고, 이병헌이 폐막식 시상자로 나섰다. 모두 남자배우 최초로 기록된 쾌거다. 특히 2019년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 올해 개막식에 깜짝 등장해 한국어로 개막을 선언했다. ‘월클’(월드클래스) 감독, 배우가 문을 여닫고 심사에 참여하는 최초 발자국을 남긴 영화제였다.



상상이나 했을까. 국내 영화인들이 칸 영화제 무대에 아무렇지 않게 오르는 모습을 칸 현지 프레스룸에서 보게 될 날이 오다니. 경쟁 후보작이 없어도 그것만으로 충분한 취재였다. 작품을 따라 이슈를 쫓는 취재에서 벗어나 해외 작품과 분위기, 팬데믹 상황에 모여든 전 세계 영화인 등을 폭 넓게 취재할 수 있었다. ‘기생충’ 수상 이후 열린 첫 영화제. 현지에서 취재하며 2년 전과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체감했다.


본지는 제74회 칸 국제영화제 기간 프랑스 남부도시 칸의 한 호텔 내 카페에서 송강호와 이병헌을 각각 만나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와 해외 무대에서 배우로서 체감하는 반응에 대해 물었다. ‘기생충’의 주역이자 최초 심사위원으로 활약 중인 송강호와 할리우드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1세대 월드스타 이병헌은 “전 세계 영화 관객들에게 한국 영화가 분명히 각인됐다고 느낀다”고 바라봤다.

송강호를 인터뷰하러 가는 길, 해변을 따라 놓인 명품샵 거리에서 방탄소년단(BTS)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여긴 부산이 아닌 칸인데.’ 이상했다. 혹자는 영화를 꿈꾸는 거의 모든 이는 칸 영화제에 가는 날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칸의 초청장을 받는 건 크나큰 영광이다. 그러나 10년, 아니 불과 5년 전만해도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칸의 온도는 지금과 달랐다.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변화를 이끄는 두 주역, 송강호와 이병헌을 만났다.

=현지에서 취재를 하다 보니 ‘기생충’ 이후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전 세계 영화인들의 시선이 달라졌음을 체감합니다. 해외 무대에서 배우로서 체감하는 바가 있나요.

송강호 “칸 측에서 봉준호 감독과 저를 남다르게 신경쓰는 게 느껴진달까요. 스파이크 리 심사위원장도 많이 관심을 보이시고. ‘기생충’ 포스터를 들고 오셔서 제 싸인을 받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한테 싸인 받아야 하는데 어제 귀국했어’라며 아쉬워하시더라고요. 물론 저희 모두 친분이 있는 사이죠. 봉 감독과 함께 ‘기생충’ 오스카 레이스를 하며 가끔 뵀거든요.”

이병헌 “우리나라 영화가 전세계인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이 큰지 느끼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크게 느끼며 연기해도 되겠구나. 우리 영화산업이 커지면 나한테도 좋은거고 후배들한테는 더 좋은 거잖아요. 지금은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한국 콘텐츠는 이런거야’ 보여주는 시간이 아닐까. 앞으로 국내 콘텐츠에 더 관심이 이어지지 않을까요. 떠올려보면 영화 마니아들만이 이나리투 감독 등 멕시코 영화에 관심을 가진 시기가 있었잖아요. 하지만 이제 우리 모두가 멕시코 영화가 훌륭하다는 걸 알죠. 훌륭한 감독님들이 많이 계시고요. 이제 우리차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은 ‘한국영화’ 하면 ‘기생충’ 일까요. 현지에서 느끼는 바가 있다면요.

송강호 “현지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미에서는 한국영화에 접근하기 쉽지 않았는데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이란, 브라질 등 남미, 중동권에서도 한국 영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해당 지역에서는 한국 영화가 굉장히 드물었잖아요. 확실히 느끼는 건 우리 영화를 대하는 벽이 없어진 느낌이랄지. 그런 면에서 ‘기생충’ 이야기를 많이 하죠. 어떤 분께서는 ‘기생충’이 나의 첫 한국영화였다는 말도 하고요. 이를 통해 그 후로도 한국 영화를 더 찾게 됐다는 말도 들었어요. 그런 말을 저한테 직접 이야기하시는 분이 많이 계세요.”

=‘기생충’이 2019년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초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이병헌 배우는 할리우드에서 부단히 노력하며 주연으로 활약하신 원조 월드스타시죠, 해외 무대에서 신뢰를 쌓아온 장본인으로서 ‘기생충’의 영광을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르실 거라고 느꼈습니다.

이병헌 “당연히 부러웠어요. 하하. 당시 새벽에 집에서 라이브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나요. 놀라운 상황이 펼쳐졌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특히 폐막식에 봉준호 감독님과 송강호 형이 한 무대에 오른 걸 보고 ‘와 정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느낌이었죠.”

=국내 콘텐츠를 바라보는 달라진 변화를 현지에서 피부로 체감하시는 바가 있으신가요.

이병헌 “올해 칸 영화제 현장에서 외신 기자들과 인터뷰하며 한국 콘텐츠를 향한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걸 깨달아요. 아무리 영화 기자라지만 제가 출연한 전작을 다 봤을 리 없는데, 전작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처음 받는 인상이에요.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점은 한국 콘텐츠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깔려있다는 것이었죠.”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왜, 언제부터 달라졌다고 보시나요.

송강호 “지난 20년 간 칸 영화제가 한국영화의 발전, 괄목할 많나 성장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과정을 20년 동안 쭉 지켜보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이창동, 홍상수, 봉준호, 박찬욱 등 뛰어난 감독님, 아티스트들이 끊임없이 좋은 작품으로 결실을 맺고 계시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느끼죠. 심사위원 중에서도 한국영화 팬이라며, 단지 인사가 아니라 한국에서 작업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는 분도 계시고요. 전 세계 영화인, 관객들에게 한국 영화라는 존재가 분명히 각인이 됐다 그렇게 느낍니다.”

=올해 칸 영화제는 어렵게 문을 열었습니다. 뤼미에르 극장에선 턱시도, 드레스에 마스크를 써야 입장이 가능하고요. 전 세계 영화계가 칸을 주목하고 있죠. 이를 기점으로 향후 영화 페스티벌이 재개되느냐 마느냐, 시선이 쏠려있기도 합니다. 심사하시면서는 어떤가요.

송강호 “방역 수칙이 워낙 철저해서 주기적으로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PCR 검사를 받았어요. 음성 판정을 받아야 입장이 가능하고요. 전 관객이 뤼미에르 극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영화를 봐야하죠. 팔레 드 페스티벌 실내에서 모두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요. 철저한 방역 수칙 하에 진행되지만 뜨거운 분위기는 예전 칸 영화제와 다를 바 없죠. 위축되지 않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니 정말 부럽습니다. 열정은 여전히 뜨거우니까요. 우리나라도 빨리 그렇게 된다면 좋겠죠.”

이병헌 “사실 저는 처음 초청 소식을 듣고 올해 칸에 갈 수 있을지 반신반의 했어요. 다행히 백신을 맞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왔는데 도착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림 같은 하늘이 펼쳐지고 행복해 보이는 영화인들의 얼굴이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으로서 이렇게 오랜만에 영화제에 와서 레드카펫에 서고 많은 영화인도 만나니까 정말 행복했어요.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죠.”



=송강호, 이병헌. 영화계를 이끄는 최고의 두 배우가 영화 ‘비상선언’에 함께 출연하셨어요. 프레스 스크리닝(기사 시사회)을 통해 공개된 영화가 무척 흥미로웠는데요. 두 분께서 한 작품에 출연하셨다는 것만으로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이병헌 “오랜만에 송강호씨와 함께 한다고 해서 좋았어요. 우리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어질지 기대됐어요. 이번 작업은 정말 좋았고,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 기억되겠죠.”

송강호 “이병헌씨와 함께 한다는 것에 있어서 엄청난 신뢰감이 앞섰어요. 한재림 감독님과는 '우아한 세계'(2007), '관상'(2013) 이후 세 번째 작업인데, 감독님께서 쓰신 작품도 좋았고 함께 하는 배우들이 든든하니까 마음 놓고 연기해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비상선언’은 우리 이웃과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소중한 가치들, 사람에 대한, 사회에 대한 가치를 ‘비상선언’을 통해 발견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칸(프랑스)=이이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