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제목 (인터뷰)‘비상선언’ 이병헌 “날 괴롭히던 실제 공황장애 연기 도움됐다”
등록일 2022-08-08 조회수 369
 
“‘재혁’ 영화 속 좁은 비행기 안 모두가 느낀 공포·두려움 표현 대변인”
“극중 딸로 등장한 아역, ‘백두산’ 속 내 딸로 등장한 아역과 실제 자매”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병헌이 출연한다그럼 절반은 이 영화가 재미있다’ 또는 흥행하겠다’ 또는 꼭 봐야겠다라고 생각한다어느 쪽이든 이병헌이란 이름 석 자에 무조건 저 셋 중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필연적이다그리고 무조건이다그래서 이병헌은 충무로에서 몇 안 되는 확신을 주는 배우 가운데 한 명이다그리고 더욱 더 그를 추켜 세울 수 밖에 없는 건 그가 극 전체의 흐름과 때로는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구멍을 스스로 메워 버리는 연기자란 점에서 더 주목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이번 영화에서도 그랬다조금만 삐끗 거리면 천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게 될 순간 이병헌의 연기는 거대한 기중기처럼 얘기 전체를 견인해 절벽 위로 끌러 올리는 역할을 도맡아 했다사실 그래서 이병헌은 어떤 장르의 어떤 얘기를 만들더라도 연출자들이 무조건 캐스팅 1순위로 꼽을 수 밖에 없는 배우가 아닐까 싶었다그래서 영화 비상선언을 보면 땅에선 송강호’ 그리고 하늘에선 이병헌이란 투 톱이 버틴 채 이 얘기 전체를 지탱하고 있지 않았나 싶었다특히 폐쇄된 공간 하늘 위 비행기 속 이병헌의 포지셔닝은 더욱 더 곤욕스러웠을 듯하다그래서 들어봤다. ‘비상선언’ 속 하늘 위 이병헌과의 대화다.
 
영화로선 2020년 1월 ‘코로나19 펜데믹’ 직전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 이후 2년 6개월 만이다. ‘비상선언’은 사실 촬영을 끝낸 지 꽤 오래됐지만 ‘코로나19’로 극장 개봉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 극장 영업 시간 제한 해제와 상영관 내 취식 금지까지 해제되면서 관객들이 몰리고 정상화 방안이 논의되는 과정 속 올 여름 시장 합류를 결정했다. 2년 만에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나는 소감이 궁금했다.
 
“진짜 오래된 기분이에요. 1년 에 두 번에서 적게는 한 번은 무조건 작품을 공개해 왔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못해 본 건 배우 생활 동안 처음인 것 같아요. 얼마 전 ‘비상선언’ 시사회에서 관객들을 몇 년 만에 만났는데, 예전에는 당연했던 게 이렇게 감회가 남다를 줄 몰랐어요. 이 영화가 개봉하면서 어쩌면 펜데믹 상황에서 훨씬 더 감정이 이입돼 보실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재미와 체감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맡은 극중 인물은 딸을 둔 평범한 아빠이자 비행 공포증이 있는 남자 재혁이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큰 위기를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관객들이 예상치 못했던 지점을 건드리며 극 전체의 흐름을 주도하는 또 다른 반전 포인트이자 치트키로 등장한다. 재혁이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남다른 책임감일 것이다. 이병헌의 눈에 비친 ‘재혁’은 이런 인물이었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정말 지극히 평범한 아빠였어요. 그리고 저 역시 그렇게 재혁을 생각했고 그랬으면 좋을 것 같았었죠. 물론 영화가 진행되면서 재혁이 가진 과거 그리고 그 과거 속 어떤 트라우마와 그것이 재혁에게 무엇을 안겨주는 지 또한 어떤 직업을 갖고 있었는지 등이 나오긴 핮죠. 하지만 우선적인 건 그게 아니라 생각했어요. 재혁은 이 영화에서 좁은 비행기 안에 모두가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을 표현하는 일종의 대변인이라고 봤죠.”
 
이병헌이 연기한 ‘재혁’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스토리 흐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재난 상황 속에서 한 인물이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면 불필요한 주목도가 쏟아지고 또한 그 인물에게 스토리 흐름 자체가 집중되면서 전체 맥락이 뒤틀려 버릴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일종의 히어로가 되는 느낌이 되는 것이다. 이병헌과 연출을 맡은 한재림 감독은 이걸 가장 경계했었다고.
 
“제가 연기한 재혁이 모든 상황을 한 번에 정리하는 느낌이 들면 가장 좋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일종의 히어로가 되는 건데. 그건 절대 하면 안 된다고 봤어요. 그냥 가장 평범해 보이는 인물이 가장 두려운 상황에 직면했고, 그걸 어떻게 깨트리고 앞으로 나아가느냐, 그걸 보여줘야 한다고 봤죠. 그런 부분이 있어야 재혁에게 모두가 감정이 이입이 되고 또 전체 스토리 흐름도 관객 분들이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이병헌의 설명처럼 그가 연기한 ‘재혁’은 구체적인 설명을 할 순 없지만 상당히 큰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놀랍게도 이병헌은 ‘비상선언’을 통해 배우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실제 자신의 트라우마를 공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바로 공황장애를 고백했다. 이런 점 때문에 극중 재혁의 상황이 더욱 더 공감이 되고 또 연기에 사실성을 투여할 수도 있을 듯했다고.
 
“우선 어떤 트라우마에 대한 건 제가 알고 있으니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리고 지금도 공황장애가 없는 건 아니에요. 크진 않지만 지금도 간혹 발현이 되긴 해요. 비행기에서 그런 적은 이젠 없는 거 같아요. 물론 다행인 건 카메라 앞에선 전혀 없고요. ‘비상선언’은 특수 촬영이 좀 많아서 사실 초반엔 좀 긴장을 했어요. 걱정과 불안이 좀 있었는데, 며칠 촬영하면서 편안해 지더라고요.”
 
이병헌은 실제로 아들만 있다. 하지만 극중에선 딸을 둔 아빠로 나온다. 앞선 영화였던 ‘백두산’에서도 딸이 있는 아빠로 등장한 바 있다. 현실에선 ‘딸 바보’가 되지 못한 꿈을 영화에서나 풀고 있다며 웃었다. 우선 그는 아들만 있기에 딸을 둔 아빠 심정을 몰라 주변을 잘 관찰했단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극중에서 투여 시키려 노력했다고. 특히 그는 이번 영화 속 자신의 딸로 등장한 아역 배우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도 전했다.
 
“극중 딸을 가진 아빠고, 저도 실제 아빠이기에 아빠 마음을 특별하게 고려할 건 아닌데. 다만 딸 가진 아빠 모습을 좀 알아야 했어요. 주변에서 좀 봤는데 정말 다르긴 하더라고요(웃음). 근데 진짜 재미있는 걸 말씀 드린다면 ‘백두산’에서 제 딸로 나온 아역 배우(김시아)가 이번에 제 딸로 나온 아역 배우(김보민) 실제 언니에요. 둘이 자매인 거죠. 영화에서 제 딸로 나온 아역들이 실제 자매란 것도 너무 흥미로웠고. 그리고 둘 다 너무 연기를 잘해요. 정말 좋은 배우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병헌은 할리우드에서도 촬영을 해본 경험이 많다. 국내에선 여러 대작과 특수 촬영 등을 모두 경험해 본 베테랑이다. 하지만 이번 ‘비상선언’만큼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단다. 실제 비행기 세트를 타고 무중력 낙하 장면을 위해 360도 회전을 하는 짐벌 경험까지 하면서 특별한 경험을 배우 인생에 더했다. 그는 이번 특수 촬영을 하면서 겪은 고된 상황을 웃으며 설명했다.
 
“저도 들은 얘기지만 할리우드에서도 이 정도 사이즈를 360도 돌린 적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촬영 전 걱정도 됐고, 인원만 100명 가까이 타기에 걱정은 더 컸죠. 정말 갖은 걱정을 다 했는데 연기를 하며 그런 걱정이 오히려 도움이 되더라고요. 며칠 지나니 나중에는 놀이기구 타는 느낌도 들었어요. 이 영화에서 꼭 빼놓을 수 없는 시그니처 장면인데, 관객 분들도 잘 봐주셨으면 해요.”
 
이병헌은 ‘비상선언’에 담긴 사회적 혐오 그리고 촬영 당시 믿을 수 없을 정도였던 상황이 이제는 현실이 된 상황에 대한 느낌을 전했다. 이런 모든 것을 만들어 낸 한재림 감독에 대한 경험도 전하면서 ‘비상선언’과 헤어지는 과정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음을 고백했다. 좋은 경험이었고 또 특별한 경험이었기에 이 영화를 통해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곱씹어봐야 할 지점을 함께 느끼길 바라는 것 같았다.
 
“제가 경험해 본 집요한 감독 최고가 김지운 감독이었는데, 한 감독은 그 선을 넘어 버리더라고요(웃음). 그러니 정말 좋은 연기가 나올 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영화 속에서 시위 장면을 촬영 당시에는 ‘이게 뭐냐’라고 했는데 촬영 중 코로나가 터지고 그게 현실이 되더라고요. 촬영하면서 느꼈던 게 과연 나라면 어떤 판단을 했을까 싶었죠. 인간이라 그럴 수도 있구나 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펜데믹을 겪은 상황이라 보시고 나면 더 생각이 많아 지실 거라 봅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