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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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병헌 최전성기? 항상 내리막길 준비한다.
등록일 2010.08.17 조회수 1928

이병헌의 도전은 멈출 줄을 모른다.

지난해 연달아 양극단에 서 있는 할리우드 상업 영화 '지아이조'와 예술 영화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내놓고 성공적인 해외 시장 데뷔를 마치더니 곧 이어 오랜만의 브라운관 복귀작 '아이리스'로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 잠시의 휴식도 없이 '악마를 보았다'(감독 김지운)에 출연해 연쇄 살인마에게 약혼녀를 잔인하게 살해당한 후 처절한 복수를 감행하는 수현 역을 연기해 논란의 최중심에 섰다.

극도로 잔인하게 폭력을 묘사했다는 이유로 영화에 대한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과 별개로 주연 배우인 이병헌과 최민식의 연기에 대해서는 극찬에 가까운 평가들이 잇따르고 있다.

김지운 감독이 관객에게 측은지심을 줄 수 있는 배우는 이병헌뿐이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힌 것처럼 약혼녀를 잃고 슬픔을 눈 빛 하나로 표현하는 그에게 동요하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이병헌을 만나 출연 소감과 이후 계획에 대해 들었다. 이병헌은 배우로서 최정점에 선 소감에 대해 "배우 생활 20년 동안 크게 내리막길을 걸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 시나리오들이 내게 계속 들어오고 내가 그걸 선택할 수 있는 지금의 상태가 오래 계속되었으면 하는 것이 배우로서 큰 소망이다"라고 말했다.

-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임에도 흥행은 순항 중이다

▲ 어릴 때부터 흥행은 크게 기대를 안 한다. 논란의 중심에 섰다는 점에서 배우로서는 참여하고 일한 의미가 충분하다. 관객을 쉽게 끌어들이고 잊혀지는 영화가 있다면 적은 관객이 들어도 주제에 대한 찬반 의견이 나뉘고 오래 나눌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작품이 좋다.

- 제한상영가 심의 과정을 알았을 때 어땠나.

▲ 등급에 관해서는 온전히 감독의 몫이다. 처음 얘기 들었을 때 만우절인가 했다. 나도 완성본을 봇 본 상태였다. 처음 노이즈 마케팅인가 생각도 했지만 나중에 심각한 사태로 느껴졌다.

- 촬영하면서 가장 잔인하다고 느낀 장면은

▲ 찍으며 혼돈을 느낀 장면이 있다. 아킬레스 건을 칼로 찢는 장면에서 복수를 결심하는 것과 실행하는 건 다르다는 걸 느꼈다. 물론 더미(대역 인형)의 발이었지만 카메라가 돌아갈 때는 진짜 찌르는 연기를 해야 했는데 표정이 일그러져 버렸다. 촬영 후 더 무표정하게 찍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의문도 들었지만 나중에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 촬영 전 생각했던 복수와 촬영하며 느낀 복수의 차이는.
▲ 시나리오를 보고 복수의 방법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복수를 할 때 감성이 90%, 이성이 10%라고 치자. 막상 복수를 할 때는 매우 충동적일 거다. 반면 수현은 경철을 여러 번 잡았다가 놔주기에 과정에서 충분히 이성적일 시간이 많다. 이런 복수의 상황이 매우 피로하게 다가왔다. 복수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수현 스스로도 많이 괴로웠을 거다.

- 눈물 연기에서는 따라 올 배우가 없는 것 같다.

▲ 연기할 때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삐질삐질 새 나올 때도 있고 폭발할 때도 있다. 어떨 때는 아쉬울 때도 있고 수현으로서 느낀 감정이 제대로 표현 돼 만족할 때도 있다. 이번에도 촬영 당시 격하게 폭발하거나 울컥한 때가 많은데 감독이 많이 잘라냈다. 김지운 감독 성향이 감정 면에서 드라이하고 과하지 않은 걸 좋아한다.

- 최민식과 처음 만나는 비닐하우스 액션신을 인상 깊게 봤다.

▲ 촬영이 시작된 지 한참 만에 둘이 만나는 장면을 찍었다. 나 스스로도 긴장감과 기대가 교차했다. 이모개 촬영 감독 등 스태프들이 민식이 형 현장은 뜨거운 에너지가 넘치고 내 현장은 섬세한 에너지가 넘친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그 액션신을 며칠 동안 찍었는데 찍을 때는 너무 오래 찍고 기술적 액션도 해야 해서 빨리 끝났으면 했다. 기둥을 잡고 날라서 차는 장면은 내가 직접 찍었다.

- 팬션에서 벽타고 올라가는 신은 국정원 요원이라도 과한 것 아닌가.

▲ 그 장면은 무술팀 스태프가 대역으로 했다. 그렇게 모든 장면을 다 따지면 어떻게 하나. 영화적 상상력으로 허용해달라.

- 김지운 감독 페르소나로 불리고 있다. 다른 감독들이 안불러 주면 어쩌나.

▲ 다른 감독과 일할 기회를 박탈 당한다는 느낌은 없다. 김지운 감독의 장점은 어떤 목표를 정하고 그 수위에 도달할 때까지 끝까지 밀어 붙이는 면이 있다. 배우로서는 때로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한계에 부딪힌다는 점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새로운 표정과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번 영화도 우연히 제의를 받았다. '지아이조' 때문에 나는 생각도 안했다더라. 우연히 한 시사회 현장에서 만났는데 시나리오를 주기에 바로 OK 했다.

- 액션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평이 많다.

▲ 액션을 무기 삼아서 진일보한 면을 보이겠다고 생각한 적 없다. 어릴 적 태권도장에 그렇게 가기 싫어 했는데 4, 5년 다닌 보람이 있다. 결국 써 먹을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 일련의 액션물들 이후 보여 줄 색다른 변신이 또 기대된다.

▲ 배우에게 다음 모습을 기대해 준다는 것은 너무 듣기 좋은 칭찬이다. 반복되지 않는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부담 되지만 내 안에 꼭꼭 숨겨 놓은 보따리를 충분히 채운 후에 그 안에서 또 새로운 무언가를 꺼내 보이고 싶다.

- '지아이조' 2편에서 비중이 높아졌다는데.

▲ 내년 초쯤 촬영에 들어간다. 아직 국내 팬들에게 그런 기대 심리를 주고 싶지는 않다. 비중이 주인공 급이다라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그 점은 그냥 열어 두고 싶다. 그 사람들은 매우 무서운 사람들이다. 조금만 잘못해도 바로 잘라 버린다.

- '지아이조'의 미국 네티즌 반응 중 에피소드가 있다면.

▲ 미국인들은 동양인이 약간 여자처럼 보이나 보다. 몸도 그들에 비해 작고 머리도 길고 스타일리시하다 보니 내 역할을 보고 '저 친구 게이냐'는 반응들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신선했다. 한국에서는 마초 같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도 비치는구나 싶더라.

- 배우로서 최전성기다. 하강기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 내 배우 인생을 그래프로 그린다고 할 때 내리막길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많이 하는 편이다. 사실 지금까지 그닥 내리막길이었던 적이 없다. 지금은 많은 시나리오들이 내게 들어오고 내가 그걸 선택하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생각 없이 즐기기만 할 나이는 아니다. 이게 언제까지 갈까. 내 큰 소원은 오랜 시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배우로 오래 갔으면 하는 거다.

- 반면 최근 전 여자친구와 송사로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들도 있었는데.

▲ 그 일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다. 세상 사람들도 다 힘들고 고통을 겪지 않나. 힘든 것은 온전히 자기 몫이다. 투정부리고 싶지 않다. 내가 숨쉬기 힘들 정도로 힘들다고 한 들 그건 내 말일 뿐이다. 남들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 종교는 있나.

▲ 불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