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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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BH & RUBEURS 입니다.

제목 [집중인터뷰] (1) 이병헌의 새로운 얼굴
등록일 2009.01.12 조회수 2124

자신의 다른 얼굴을 거울에서 발견하는 한, 배우는 지치지 않는다. 벌써 연기 경력 17년. 그러나 이병헌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에게선 먼 길을 걸어온 자의 피로가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의 종두가 어느 순간 이수혁병장(‘공동경비구역 JSA’)이나 인우(‘번지점프를 하다’)가 되고 다시 또 선우(‘달콤한 인생’)가 되는 세월 속에서,  이병헌은 어느새 한국영화가 깊게 사랑한 얼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거친 후, 트란 안 홍 감독이 연출하는 ‘나는 비와 함께 간다’(I Come With The Rain)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지아이 조’(G.I. Joe)를 통해 그의 걸음은 바다를 건넜다. 다음 작품이 한국의 TV 시리즈 ‘아이리스’라는 것까지를 감안하면, 종횡무진 다양한 길을 누비고 있는 그는, 어쩌면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그 점에서 그는 ‘비’와 다르게 간다.) 그러나,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가장 먼저 도착한다.

하지만 그의 다채로운 필모그래피에는 그 핵을 적시고 있는 정서가 있다. 아련하고 쓸쓸한, 그 어떤 기운. 그러니 시종일관 왁자지껄 신나기만 할 것 같은 신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쌉싸름한 뒷맛을 느꼈다고 해도 엇나간 감상은 아닐 것이다. 거기엔 이병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병헌을 만났다. 인터뷰 장소에 놓여 있던, 꽃을 든 이병헌 스탠디와 대형 액자 속에 담긴 이병헌 사진 사이에서, 배우 이병헌이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막힘 없이 시원시원한 대답이었지만, 어떤 질문에도 섣불리 말을 섞는 성급함은 없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동원한 관객 수가 6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개봉 후 이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열광적인 반응과 비판적인 반응으로 양분되어 있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배우들에 대해선 대부분 칭찬 일색이라는 점입니다. 이병헌씨의 악역 연기에 환호하는 분들도 참 많던데, 특히 10대 관객들이 이병헌씨에게 특히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게 눈길을 끕니다.(웃음)

“일반적으로는 관객의 반응을 미리 예상할 수 있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은 경우인 것 같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칸의 관객들은 대부분 이 작품의 오락영화적인 본성을 만끽했는데, 저도 관객 입장으로 보면서 그런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거든요. 반면에 이 영화에 참여한 배우들 입장에선 근본적인 아쉬움 같은 게 있어요. 사실 김지운 감독님 원망할 사람이 한둘이 아닐 듯 한데(웃음) 너무나 고생하고 노력해서 찍은 연기가 최종적으로 영화에서 편집되어 빠져버린 게 무척 많았거든요. 정말 몇 년간 이 영화에 모든 것을 바쳤는데 작품 속에선 그림자만 잠깐 나온 경우도 있어서, 그런 분들에 비하면 전 행복한 푸념을 하고 있는 것이긴 해요. 그래도 저 역시 살짝 아쉬움이 들었던 게 사실이거든요.”

-구체적으로는 어떤 장면이 잘려나갔습니까

“모든 배우들이 그런 아쉬움을 느끼고 있을 거에요.(웃음) 사실 잘려나간 양 그 자체는 일차원적인 것인데, 배우마다 각기 ‘이 연기만은 제발 살았으면 좋겠다’싶은 것들이 있게 마련이잖아요? 이 작품에서 제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 무척 맘에 들어 했던 표정 연기가 두 개 있었는데, 그게 다 빠졌어요.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이나 리듬을 고려할 때, 그 두 장면이 들어갈만한 자리가 영화에 없다는 감독님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거죠.(웃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배우로서 저 자신은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될 때 좀 자신이 없었던 듯 해요. 나도 내 연기에 대해서 100% 만족스럽지 못한데, 과연 보는 분들이 만족스러울까, 싶었던 거죠.”

- 배우는 자신을 지지해주는 팬층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게 사실 아닙니까?
그런데, 이 영화를 통해서 아직 10대 관객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셨을 테니, 기분이 괜찮으실 듯 한데요.(웃음)

“여행을 떠날 때 제일 기분 좋은 순간은 출발하는 자동차 안에서 신나게 음악 틀고 노래도 부를 때잖아요? 행복감의 크기로 보면, 정작 여행 가서 노는 것보다 막히면서 가는 차 안에서의 느낌이 훨씬 더 좋은 법이죠. 그러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내일이 다시 월요일이구나’ 싶은 생각에 기분이 가라앉기 마련이잖아요. 갈 때와는 상반되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주는 우울한 느낌이 있어요. 그런데 여행을 자주 가게 되면, 아예 떠날 때부터 돌아올 때의 기분이 떠오른다는 거죠.(웃음) 처음 아이돌 스타가 되면 전국민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 같은 느낌에 무작정 좋기만 하기 마련인데, 이제 그런 기분은 전혀 아니라는 거죠. 제가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팬 미팅을 할 때 이런 이야기를 몇 차례 한 적이 있어요. ‘저는 늘상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원하시면 언제든 올라와서 야호를 외치고 쉬다가 내려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또 저를 찾고 싶으시면 다시 한 번 산행을 하시면 되고요. 다만, 가급적 자주 오시고 오래 계셨으면 좋겠네요.’ 그런 게 제 마음입니다.”

- 영화를 보니 스토리와 리듬을 포함한 모든 것에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무게중심은 확실히 ‘이상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보고 나서 김지운 감독님이 송강호씨를 편애했다는 생각이 혹시 들진 않으셨나요?(웃음)

“무척 많이 들었죠.(웃음) 강호 형 뿐만이 아니에요. 강호 형의 경우는 애초부터 시나리오 자체가 그쪽으로 맞춰져 있어서 예상을 했는데, 이 영화를 보니, 세상에, 정우성씨를 어쩌면 그렇게 멋지게 등장시킬 수가 있는 거죠?(웃음) 칸 영화제에서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호텔에서 우리끼리 작은 파티를 했을 때 정우성씨와 강호형에게 계속 ‘두 사람은 좋겠다’고 투덜댔어요. 뭐,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거겠죠.(웃음)”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고 아예 캐릭터의 성격이 제목에 박혀 있는 영화에서 ‘나쁜 놈’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물론 영화를 다 보면, 그 세가지 성격이 서로에게 혼재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지만, 이렇게 제목에까지 명시된 전형적 악당을 연기하시는 마음은 어떤 건가요. 이런 악역에게는 눈빛에서 손짓과 고개짓까지 구체적으로 요구되는 어떤 양식화된 전형이 있게 마련인데, 사실 배우들은 지나치게 전형적인 캐릭터는 좀 꺼리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있었어요. 이 역을 하기로 결정하기 전에도, 만일 제가 악역을 맡아서 연기하게 된다면, 그 역할을 고스란히 표현해야 하는 배우인 저로서는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지 말고 연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