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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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야누스 같은 배우 이병헌의 1인4색 ①한국영화 속의 이병헌 '좋은 놈, 멋진 놈, 복잡한 놈'
등록일 2009.01.12 조회수 3115

[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 이병헌은 핼쑥해 보였다. 1일 오후 본지와의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병헌은 칸에서의 모습보다 3, 4kg 정도는 빠져 보였다. 밝고 건강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이틀간의 인터뷰 일정으로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 피로 누적으로 몸살과 편도염이 생겨 병원 신세를 졌다는 뉴스 기사에 어머니의 걱정 어린 전화를 받기도 했단다. "아버지 친구분께 전화를 받으셨대요. 기절했다고 들으신 모양이에요. 깜짝 놀라서 전화하셨더라고요."

이병헌의 몸살은 오랜 해외촬영으로 축적된 피로가 귀국 후 탈을 일으킨 탓에 생긴 것이다. 17일 개봉 예정인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과 베트남 감독 트란 안 홍의 '나는 비와 함께 간다', '미이라' 시리즈로 유명한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G.I. 조'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소모된 체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하지만 영화 '놈놈놈'을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은 칸영화제 레드카펫 위에서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창이는 내면적으로 보면 많이 고독하고 쓸쓸한 놈일 수도 있어요. 태구(송강호 분)와 도원(정우성 분)은 서로 잡아야 하는 처지라서 어쩔 수 없이 같이 가게 되죠. 두 인물은 매우 현실적인 반면 창이는 물질적인 것보다는 명예를 최고로 생각해요. 다소 바보 같고 유치해 보이기도 하지만 숭고해 보이는 측면도 있죠."

'놈놈놈'에서 이병헌이 맡은 역할은 '나쁜 놈' 창이다. 창이는 이병헌이 처음 시도하는 악역이다. 구릿빛 피부와 한쪽 눈을 가린 만화적 헤어스타일 사이로 이글거리는 눈빛이 이병헌의 새로운 단면을 보여준다. "배우란 자신의 다중인격적인 면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지론이 맞다면 이병헌의 가슴 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악한 기운을 극대화시킨 게 창이라는 인물일 것이다.

그간 영화 속 이병헌은 늘 '좋은 놈' 혹은 '멋진 놈'이었고 때로는 '슬픈 놈'이었다. '공동경비구역 JSA' '중독' '번지 점프를 하다' '달콤한 인생' '그해 여름' 등에서 그의 모습은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난생 처음 악역으로 변신한 그는 "기대 이상으로 새로운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며 약간의 과잉과 스타일을 가미한 새로운 연기에 쾌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달콤한 인생'에 이어 김지운 감독과 두 번째로 작업한 이병헌은 감독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특별한 계산 없이 상황에 맡겨서 나오는 감정과 표정을 실험했다.

하지만 창이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말 타는 연습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난 것이다. 다행히 위기는 기회가 됐다. 그는 깁스를 한 채 상체 근육을 단련시켰고 그 결과 '놈놈놈'에서 신경질적이고 억세 보이는 마른 체형의 근육질 악당을 만들어냈다.

'놈놈놈'의 창이는 나쁘다고 표현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은 복잡한 놈이다. 창이는 악랄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며 너무 진지하고 심각해서 웃기기도 하다. 창이처럼 언젠가부터 영화 속 이병헌도 '복잡한 놈'이 됐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수혁도 그랬고, '중독'의 대진도 그랬으며 '달콤한 인생'의 선우는 그보다 더했다.

김지운 감독은 "섬세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만 이병헌처럼 시선과 눈매, 목소리 등 가장 조화롭고 이상화된 상태에서 내면을 끌어낼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제 관객들이 '놈놈놈'을 보며 김지운의 극찬을 직접 확인할 차례다.


고경석 기자 kave@asiaeconomy.co.kr
사진 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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