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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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병헌 동료들 나를 꼬마취급… 내 나이 알고는 깜짝 놀라
등록일 2009.07.29 조회수 2570

[중앙일보 이영희.최다은]

한국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이야 이제 별로 새로운 뉴스가 아니지만, 이병헌(39)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으로 연기력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한국 대표배우이자 아시아가 주목하는 한류 스타라서다. 그가 할리우드 액션물 '지.아이.조-전쟁의 서막'(8월 6일 개봉)에 출연했다. 인류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 '코브라 군단'에 맞서는 특수부대 '지.아이.조'의 활약을 그린 SF물로, '미이라' '반 헬싱'의 스티븐 소머즈 감독이 연출했다.

이병헌은 이 영화에서 스승을 살해한 어두운 과거를 지닌 악역 스톰 셰도우 역할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간 한국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작에 비한다면 극중 비중이나 연기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는 평. 2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병헌을 만났다.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지.아이.조'를 선택한 이유는.

"'지.아이.조'가 미국에서는 만화와 TV 시리즈로 만들어져 유명하지만, 한국에선 잘 모르는 이야기라 나도 처음엔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더 넓은 곳에 나를 알리는 '과정'으로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모험을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또 해보랴' 싶은 생각이 더 들었다.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박찬욱 감독에게 의논했더니 '하라'고 했다. 네 살 때부터 극장에 가는 걸 좋아했었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상상하는 게 실현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 영화들이 대부분 SF 액션 아닌가.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내가 영화에서 원초적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건 바로 그런 부분이었다. 완성본을 보고 나니 '내가 이런 엄청난 영화를 찍었구나' 싶더라. 내 뒤에 자동차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엄청난 폭발이 있고…참 신기했다."

-영어 대사가 무척 능숙하다. '이병헌 목소리가 아닌 것 같다'는 반응도 있다.

"영화 속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딴 사람 같았다. 대사가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웃음) 한국에서는 시나리오를 정독하고, 현장에서는 느낌대로 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프로인데 대사로 NG를 낼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감정조절에 앞서 대사를 완벽하게 외우려 노력했다. 그래도 촬영장에서 억양 때문에 지적받을 때마다 머릿 속이 하얘지더라. 발음과 억양에 신경 쓰느라 연기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영어 쓰는 동안 머리 아팠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얼마 전 일본에서 '지.아이.조'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때도 영어로 인터뷰를 했다. 일본 사람은 영어 안쓰지만, 홍콩·싱가폴·필리핀 때문에 영어로 했는데, 말도 안되는 말 해서 많이 짤렸을 거다. 하하."

-완성된 영화를 보니 어떤가. 너무 힘이 들어갔다는 평도 있다.

"선한 캐릭터냐 악한 캐릭터냐를 떠나 존재감이 커서 선택했다. 만화가 원작인 작품이라 과장된 눈빛, 과장된 액션을 연기할 수 밖에 없었다. 감독은 크게 만족했다. 원작을 모르는 아시아 관객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거다."

-'달콤한 인생'이나 '놈놈놈'에서도 액션 연기를 했지만, 이번 액션은 또 다른 맛이 있었을 것 같다.

"크게 다른 건 없었다. 검술을 처음 시도했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다. 한 달 정도 훈련했다. 상대인 스네이크 아이즈를 연기한 레이 파크는 이미 무술인이었다. 중국 전통 무술 우슈의 유단자다. 그러니까 경쟁심이 생기더라. 작품 속에서도 경쟁상대였지만, 실제로도 경쟁이 붙었다. 내가 그에 비해 무술실력이 부족하면 이야기 자체가 성립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더 열심히 했다."

-함께 작업한 배우들과 처음엔 서먹했다던데.

"처음엔 소심하게 창 밖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김지운 감독한테 전화가 왔다. '네가 거기서 건방지게 무게 잡는다는 소문이 났더라'면서(웃음). 친해진 결정적 계기는 아주 사소한 일 때문이다. 립코드 역을 맡은 마론 웨이언스가 노트북에 재밌는 걸 가져왔다며 모이라고 해서 가 보니 포르노 영상이었다. 보면서 웃고 떠들다 보니 서먹한 게 없어졌다. 다른 배우들이 처음엔 내 나이를 모르고 꼬마 취급하기도 했다. 나중에 '니들은 내 자식같은 놈들'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더라. 하하."

-누군가 '이병헌은 잘 생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배역만 골라서 맡는 것 같다. 그런데 또 영화 나온 걸 보면 진짜로 멋있다. 얄밉다'는 말을 하더라.

"그랬나? 의도한 건 아닌데…. 이제는 너무 멋있다 싶으면 낯간지러워서 잘 못하겠더라. 내가 잘 생겼다는 생각은 안하지만 멋있게 보이고는 싶다. 그리고 멋있다는 말보다는 '존재감이 느껴진다'는 말이 더 좋다. 그런데 이게 지나치면 자칫 무서워지는 데 거기까지 가고 싶지는 않고."

-혹시 일본 팬들이 촬영장에 찾아왔는지.

 
"LA에 찾아왔다. 경비가 정말 철저한데, 메이크업 담당자를 통해서 알음알음으로 왔더라. 프라하에 갔을 때는 공항에 일본 팬들이 기다리고 있더라. 정말 놀랐다."

-할리우드를 경험해보니 어땠나.

"무척 합리적이다. 계획적이다. 시간관념이나 소품 준비 면에서 놀라웠다. 무기 소품이 굉장히 많은데 갑자기 작동이 안 될 경우에 대비해서 서너 가지로 준비해놓고 1분 내로 바꿔준다. 내 흰 코트 의상도 여러 벌 준비해놓고 뭐가 묻거나 하면 바로 교체해줬다. 중간 중간 먹는 간식도 많았다. 간식이 1시간마다 나온다. 어떤 날은 가게보다 큰 트레일러가 와서 먹고 싶은 대로 만들어줬다. 굉장히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작품이다 보니 현장에서 지켜보는 투자자나 제작자의 입김이 크다.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고친다. 한국만큼 감독에게 권한이 주어지는 데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계획에 딱딱 맞춰서 진행하고 돈의 논리에 맞춰서 모든 게 돌아가는 게 조금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 촬영을 마치는 순간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내가 잘 한걸까'였다. 너무 새로운 환경이라 정신이 없었다. LA에 도착해서 트레이닝 받던 순간부터 몇 개월간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라. 워낙 친해졌기 때문에 동료 배우들과 헤어지는 게 서운했다. 워낙 배우들이 다국적이라 다들 비행기 타고 뿔뿔이 헤어졌다. 그러니까 더 헤어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한국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이 이어지는 데,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첫째는 언어다. 미리미리 준비 잘 하라고 말하고 싶다. 열린 자세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배우들은 너무 갇혀 지내는데, 생활습관이 마음으로 이어진다. 열린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선입견을 없애야 남의 문화도 쉽게 잘 소화할 수 있다."

이영희 기자·최다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