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선택이 있었다면 그건, 배우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제목 [인터뷰②] 이병헌 ”김윤석 혀꼬이면 본인에게 화내…뜨거운 배우”
등록일 2017-10-04 조회수 804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삼배구고두례 신에서 숨죽여 우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한 겨울 촬영을 마치고 3~4월쯤 됐을 때 찍었다. 막 더워지는, 겨울용 의상을 차려입고 '날씨 덥다~'고 생각되는 시기였다. 눈물과 함께 땀도 났다.(웃음) 명길은 이성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인물이다. 슬픔과 아픔을 참고 결국 그 자리에 엎드려 있지만 인조 만큼 가슴이 찢어지는 사람은 명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 궁극적으로 그 상황을 만든 결정적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본인의 말로 인해서, 소신으로 인해서 한 나라의 임금이 청나라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게 됐다. 말로 하거나 상상했을 때와 달리 실제로 왕의 이마가 땅을 찧는 것을 두 눈으로 보는 느낌은 다르지 않았을까. 물론 내가 직접적으로 삼배구고두례를 하라고 시킨 것은 아니지만 복합적이면서도 슬픈 감정이 스윽 올라와 그냥 터질 것 같았다. 목놓아 울고 싶지만 소리도 못 내고 티도 못 낸다. 연기를 하는 것인데도 참 많이 힘들었다."

- 김상헌을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난 나에게 상헌을 하라고 했어도 했을 것이다. 근데 그런 마음은 있었다. 영화사에서는 '명길을 해줘서 고맙다'고 하고, 어디 영화인들 모임에 가면 '난 네가 상헌을 할 줄 알았어'라고 하더라. 그래서 '뭐지? 명길이 안 좋은 역할인가? 나 상헌을 택했어야 하나?' 생각하게 되더라.(웃음)" 

- 본인의 실제 성격은 어떤가. 
"난 나에게 상헌과 명길의 모습이 다 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지는 않더라도 보통 상헌 혹은 명길 두 사람 중 한 사람과 조금 더 비슷하다고 말을 할텐데, 난 어떤 때는 완벽한 상헌의 모습이, 어떤 때는 완벽한 명길의 모습이 나오는 것 같다. 극과 극일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성격적으로도 치우침은 없다." 

- 김윤석과도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눴을텐데. 
"사실 연기에 대해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그냥 나 혼자 생각했던 것은 '목소리가 되게 크시구나' 정도? 진짜 쩌렁쩌렁 울리더라. 어떤 면에서는 부럽기도 했다.(웃음) 그리고 대부분 연기를 하면 상대 배우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하지 않나. 근데 우리는 앞만 보면서 연기해 저 양반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어떻겠구나' 상상만 했는데, 영화를 볼 때 '한 나라의 국왕이!' 하면서 왕에게 던지는 마지막 대사와 표정이 가슴에 확 꽂히더라. 신기했고 훅 빠져들었다."

- 특별한 촬영 에피소드는 없나. 
"'어떻게 연기했다'는 것은 다 끝났으니까 쉽게 말하지 할 땐 진짜 힘들다. 이번에는 대사량이 많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황동혁 감독은 한 두 테이크만에 촬영을 끝내버린다. 본인이 원하는 장면이 나왔다 싶으면 그대로 끝이다. 아주 특이한 감독님이다.(웃음) 그런 상황에서 혀가 꼬여 NG가 나면 모두가 괜찮다고 해도 스스로 민폐를 끼친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함께 촬영하는 대신들은 또 대부분 선배님들이고. 그러던 중 윤석이 형이 여러 번 NG를 내게 된 적이 있는데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는지 막 화를 내더라. '역시 열이 많으신 배우구나. 감정을 한 없이 끝까지 올릴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는 뜨거운 배우구나'라고 생각했다." 

- 김윤석의 전작 중 재미있게 본 작품이 있다면. 
"'황해'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 황동혁 감독과의 작업도 흥미로웠나 보다. 
"겉으로 풍겨지는 느낌은 공부벌레 아닌가. 농담 하나도 못 할 것 같이 생기고 왠지 고리타분 할 것 같고. 어떤 신에 관해서 배우와 이야기를 할 때도 진짜 재미없이 학구적으로만 이야기 할 것 같았다. 눈도 좀 신경질적으로 생기지 않았나.(웃음) 그래서 '아, 이번 작품은 감독님과는 재미가 없겠구나'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 반전이었나. 
"깜짝 놀랐던 것이 배우들 이상으로 감독님 이름으로 된 커피차가 현장에 늘 상주해 있었다. 전작이 몇 작품 안 되지 않나. 근데 전작을 함께 했던 스태프들, 배우들 등 감독님 손님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았다. 너무 궁금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혹시 감독님 팬클럽 있냐'고 물어보니까 '작품 할 때마다 스태프들 사이에서 팬이 생긴다'고 하더라. '저 양반 진짜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역시 사람은 겉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심지어 재미있고 유머 센스도 대단하다." 

- 아내 이민정도 시사회를 통해 '남한산성'을 봤던데 반응이 어떻던가.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 특히 날쇠(고수)의 사연이 나올 때 엄청 울었고, 그 때부터 끝까지 계속 슬펐다고 이야기 했다."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

어떻게 보면 '남한산성'은 인물이 아니라 사건이 중심이 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감독 예술이 될지, 배우 예술이 될지는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작품을 선택함에 있어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작품 자체가 나에게 울림을 줬는지, 안 줬는지가 선택의 가장 첫 번째 기준이 된다. 슬픈 영화도 여러가지 형태가 있지 않나. '남한산성'은 울림의 깊이가 깊고 클 것이라 생각했다." 

- '작품보는 눈'이 언급되는 이유 아닐까. 
"내가 읽은 느낌 그대로 이야기 되고, 영화로 표현된다면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지나가 버린 역사다. 가상도 아니고, 엔딩을 우리 마음대로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더 안타까웠다."

- 우려되는 마음은 없었나. 
"흥행면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난 오히려 이게 더 좋았다. 영화가 승리의 역사만 고집하고, 우리만 잘났다고 하는 것도 웃기지 않나. 암울하지만 실패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선택하면서 본다는 것도 좋았고, 이것을 영화화 하겠다고 한 사람들도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 대작이 나오면 흥행 언급이 빠질 수 없고, 1000만 돌파 가능성과 직결된다.
"관객이 많이 드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좋은 영화였다'는 말을 듣는 것이 나는 더 좋다. 1000만이 넘는 것도 되게 축하하고 좋은 일이지만, 정상적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000만을 넘고 머릿속에서 이야기와 이미지가 쉽게 날아가 버리는 것 보다는, 1000만이 안 되도 정서가 남아있는 것이 더 좋은 영화 아닐까 생각한다. 진심이다."

- 그래서 작품 선택도 다양하고, 그래서 '믿고보는' 수식어도 얻게되는 것일까.
 "오로지 흥행만 생각하고, 특정 이미지만 생각했다면 어쩌면 '싱글라이더'는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 스스로 그러한 이미지에서 벗어 나려고 하는 것 같다. 당연히 못 미더운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 않나. '무조건 믿고 볼거야' 보다 내 필모그래피를 쭉 놓고 '다양하니까 골라보면 돼'라고 생각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 쉼없이 활동하고 있다. 
"할리우드 작품을 찍는다고 몇 개월 해외에 나가있을 때, 우리나라 영화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잠깐이지만 안에 있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은 분명 다르다. 과거 중국·홍콩 영화들이 전세계 영화지에 실릴 때 '와,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 영화들이 그렇더라. 객관적으로 바라보니까 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끌리는 작품이 있으면 체력이 될 때까지 하자'는 주의다. 물론 몸에 두개가 아니니까 쉬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고, 보는 사람이 지칠 수도 있으니 너무 자주 나오는 것도 좋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조율하면서 활동할 계획이다."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준비는 잘 되고 있나. 
"하나도 못했다. 감독·작가·배우들이 다 같이 모여 미팅은 했는데 대본을 안 주셔서 리딩은 못했다. 기다리고 있다.(웃음)" 

- 무려 9년 만의 드라마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을까.
"'아이리스'가 마지막이었으니까 오래되긴 했다. 이번 드라마는 작가님도 작가님이지만 소속사 손석우 대표의 힘이 컸다.(웃음) 사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대사를 맛깔나게 쓴다.' 난 솔직히 말씀드려서 드라마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도 사람이라면 전성기가 있을텐데, 특히 방송은 작가의 예술이라고 하는 상황에서 다들 하나같이 '김은숙 작가 대본은 언제봐도 예술이야. 대사가 끝내줘'라고 하니까 내 입을 통해 직접 연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 파트너 김태리와 나이 차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어떨 것 같은가.
"아직 모르겠다. 대본도 안 나왔는데 미리 뭘 예상하고 예측할 수는 없지 않나.(웃음) 다만 내가 한참 '내부자들'로 상을 받으러 다닐 때 같이 몰려 다녔던 사람이 나·손예진·김태리·박정민이었다.(웃음) 무슨 영화 한 편을 찍은 것 같다. 열 몇 개 시상식 중 반 이상은 만났다. 최근 촬영을 마친 '그것만이 내 세상'을 정민이와 함께 찍었는데 그래서인지 빨리 친해졌고 오래 전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서먹하지 않게 잘 마쳤다. 태리 씨와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 현재 배우로서 하고 있는 고민은 무엇인가. 
"고민이 있기는 한데 그 고민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늘 다르다. 고민을 하다보면 해결되고 또 다른 고민이 생기지 않을까. 없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oins.com